상사의 출근과 함께 시작된 본격적인 업무 시작
사실 출근하고 처음 2주는 큰 위기가 없었다. 나와 같은 컨설턴트에게 일을 배정하는 상사가 휴가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주는 노트북 세팅에 시간을 보냈고, 둘째 주는 이곳저곳 자료를 살펴보느라 바빴다. 그 과정들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3주 차 월요일 아침, 드디어 상사가 사무실에 출근했다. 작년과 올해 두 차례 온라인 인터뷰로 만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집과 관련해 자주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업무 지시자이자 평가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긴장이 되었다. 함께 일해야 하니 잘 지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잘 지내고 싶다는 욕심이 동시에 작용했던 것 같다. 그녀의 등장만으로도 나에겐 큰 압박이었고, 이제야 비로소 은행에서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상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덧 출근한 지 2주가 지났으니 이제는 내가 제 역할을 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예상치 못한 회의가 잦았고, 부서장이 나를 직접 부르는 일도 생겼다. 한국에서는 ‘일이야 그냥 하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여기서는 무슨 일인지조차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지시를 잘 듣지 못해 답답했고, 업무 내용을 명확히 알지 못하다 보니 누가 해야 할 일인지, 언제까지 해야 할 일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누구보다 빨리 일을 파악한다고 자부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못한 스스로가 아쉽게 느껴졌다.
업무 파악이 어려웠던 이유를 돌아보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내 역할은 기금 코디네이터인데 은행 내 부서가 워낙 많고, 그 부서들이 다 약어로 불리다 보니 파악이 쉽지 않았다. 또 기존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고, 한국처럼 인수인계 자료가 정리되어 있지 않아 파악이 늦어졌다. 물론 자료들은 공유되어 있었지만, 한국과는 전혀 다른 형식이라 익숙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부족한 영어와 소통 방식이었다. 한국에서는 간단한 일은 메신저나 메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그룹 통화와 회의가 잦았고, 의견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국제기구에서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점심시간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어울려 식사하고, 퇴근 후에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자리에서 급히 점심을 해결하고 퇴근도 늦어졌다.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해 실생활에서 활용하고 싶었지만, 여유도 없었고 머리도 따라주지 않았다. 영어도 버겁게 느껴져 더 힘들었다. 결국 지쳐 곯아떨어지고, 새벽에 눈을 뜨는 날들이 이어졌다. 점점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도 줄어드는 듯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없는 한 주였다. 이 상황이 위기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노력한다면 언젠가 극복할 수 있는 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 그리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게 이유다. 매일 새벽 러닝을 빠짐없이 했고,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했다. 무엇보다 일을 또렷하게 정리해 알려주는 상사와, 나처럼 시행착오를 겪는 다른 컨설턴트가 옆에서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위기일 수 있지만 동시에 긍정적인 부분도 많다. 그리고 분명 성장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이런 고생스러운(?) 도전을 위해 내가 아비장까지 자청에서 온 게 아닌가? 나의 노력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