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직시하고, 가장 나답게 일해보고 생활해 보기
한국에서 머나먼 이곳까지 왔는데, 생각보다 빨리 마주한 위기에 당황했다. 잘 들리지도 않고, 잘 나오지도 않는 영어. 그리고 전혀 쓸 줄 모르는 불어까지. 언어 때문에 위축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동료의 예상치 못한, 내 기준 이하의 비즈니스 매너도 당혹스러웠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한 달 동안 나름대로 차곡차곡 일을 해왔는데 괜히 주눅이 드는 상황이 아쉬웠다.
내 삶의 약 40년간 ‘빅데이터’를 되짚어보니, 탈이 났던 순간은 늘 나답지 못했을 때였다. 괜히 착한 척을 하거나, 할 말을 삼키거나, 내 성격을 드러내지 못했을 때였다. 쉽게 말해, 내 성질대로 하지 못했을 때 무너졌다. 그래서 주눅 들 필요도 없고, 그러지 않기로 다짐했다. 일단 부딪쳐보자는 마음으로, 말이 매끄럽게 나오지 않더라도 할 말은 하고, 내 생각을 한국에서처럼 분명하게 전달하기로 했다. 그리고 평소 내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보기로 했다. 물론 내가 동료들에게 기대했던 건, 내 나라 한국의 문화 차이에 대한 이해였다.
그래서 요청이나 부탁이 들어오면 명확하게 답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잘못된 부분도 이제는 넘기지 않았다. 변명처럼 들리는 말은 정확히 짚었다. 상대가 이해했는지는 몰라도, 내 속은 시원했다.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메일로 일이 오면,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건 누구보다 빠르게 처리했다. 내 일과 남의 일을 따로 나누지 않고, 나에게 오는 건 모두 내 일이라 생각하고 대응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하듯 빠르고 단호하게 처리했고, 미적거리기 전에 답장을 보내며 일을 끝냈다. 메일로 주고받으니 오히려 커뮤니케이션도 편했다. 그제야 조금은 손에 잡히는 느낌도 들었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에서 재밌게 일하던 때처럼 기분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일이 많으니 오히려 집중하기 좋았고, 억울할 것도 없었다. 사실, 내가 원해서 온 조직에서 일이 많다는 건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도 꾸준히 이어갔다. 한국의 정책 자료를 동료들에게 공유하고, 한국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누구보다 빠르게 응대했다. 그렇게 하며, 본인 스스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또 거의 매일 출근 전에 러닝도 하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조금씩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또다시 위기는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 사실, 당장 위기가 닥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본인을 칭찬해주고 싶다. 내일은 회사에 회식이 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도 더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오늘 회식 때는 '한국의 회식 문화 차이'를 기대해 보며 나답게 참석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