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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한 유니씨 Sep 24. 2019

<"올 댓 제주"- '하도리 가는 길'>

- 하도리에 가보았어요


임인건의 <올 댓 제주> 앨범을 2015년 5월 구입했다. 임인건이 누군지 몰랐던 것처럼 하도리 여행도 계획은 커녕 꿈도 꾸지 않던 때였다. 이 앨범에서 내가 아는 이름이라고는 요조, BMK 정도였으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건 바로 앨범 제목, <all that jeju> 였다. 아주 그냥 무조건 덮어놓고 마음이 확 쏠렸다. 울고 싶을 때 비 내리는 것처럼 제주도에 다가가고 싶은데 '올 댓 제주' 라니, 이보다 더 딱 떨어질 수 없다 싶었다. 

게다가 이미 익숙한 문구, ‘all thar jazz’ 랄지, ‘all that cinema’ 에 이어 '올 댓 제주', 발음 할수록 입에 잘 붙고 작명센스 또한 좋다고 생각했다(‘올 댓 재즈’는 70년대 미국 영화 제목으로 연극, 노래 제목, 재즈 바, 카페 등 관련 이름으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올 댓 시네마’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 홍보사 이름, 1990-2000년대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에겐 꽤나 익숙할 것이다).

 

냉큼 앨범을 주문하고 매일 매일 들었다. 아니 그냥 계속 틀어놓았다. 좋아하는 CD를 들을 땐, 그럴 리 없겠지만 ‘마르고 닳도록’ 듣는 습성을 지녔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CD도 하루 종일 돌아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앨범 전체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곡의 순서나 멜로디가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가사는 잘 안 들어온다. 음악을 틀어놓고 자료를 찾거나 글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음엔 단순하게 멜로디로 음악을 듣는 편이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가사는 커녕 CD를 틀어놓았는지도 어느 순간엔 잊기도 하니까. 푸하하하 굉장히 몰입도 좋은 작가(코스프레) 같네. 어쩌면 락이나 메탈이 아닌 클래식이나 영화음악 정도를 틀어놓기 때문 일수도 있는데.


하여튼 <올 댓 제주>를, 거짓말 좀 보태면 석 달 열 하루 정도 쉬지 않고 들었는데 그 중에 가장 와 닿는 곡이 ‘하도리 가는 길’ 이었다. 그러니까 그 노래는, 내가 들으려 애썼다기 보다, 낮이고 밤이고 돌아가는 음반에서 순서대로 나왔다 흩어지는 열 개의 곡들 중, 내 귀에 들어와 흩어지지 않고 오래 남아 다져지듯 음미된 노래였던 것이다.

앨범을 들여다보며 확인한 가수 이름 강아솔,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기타 선율과 읊조리듯 편안한 목소리가 귀에 싸악~ 들어왔다. 마치 정갈하게 쌓인 김밥을 누군가 입으로 쏙쏙 넣어주는 것처럼 나머지 아홉 곡은 그런대로 잘 들렸다가 흘러가는데 ‘하도리 가는 길’만큼은 들으면 들을수록 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

 

2016. 1. 7 . 하도리 버스 정류장에서 바라본 마을 입구

가수 이름이 처음인 것처럼 ‘하도리’ 또한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곳이 실제 지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앨범 전체를 주야장천 듣다 못 해, ‘하도리 가는 길’에만 도돌이표가 달려있는 것처럼 다시 그 한 곡만 듣고 또 듣고 다시 듣는 그 정성으로 지명 하도리를 한번쯤 찾아볼 만도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이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하도리 가는 길’은 내게, 강아솔과 세트로 각인되어 그 자체로 완벽한 무엇이었다. 정말 제주도에 하도리가 있는지, 그 길 따라 걷고 싶고, 먼 곳에서 내 님이 손짓을 하는지는 그 다음 문제였던 것이다. 

웃긴 건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두 계절 뒤 하도리를 찾게 될 거고, 그렇게 하도리를 마음에 품게 되어 이렇게 책 제목으로까지 연결 될 것이라고는 수 백 번도 더 ‘하도리 가는 길’을 들으면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노래로 익숙했기 때문에 하도리를 선뜻 선택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노래 때문에 하도리를 콕 찍어서 결정했느냐는 꼭,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질문만큼이나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그냥 '하도리 가는 길_ 잠시라도_ 하도리에 가보았어요' 로 돌고 돌아 이어지는 하나의 완벽한 구, 필연, 운명(좀 오바다), 그럴 수밖에 없을… 뭐 그런 것이다. 

 

하도리를 숙소로 정하기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곳을 숙소로 정하고 나서 또 다시 앨범을 듣기 시작했다. 

<올 댓 제주>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서 여행 준비가 시작되어 캐리어 지퍼를 맞물려 채울 때 음반 역시 돌아가기를 멈췄다. 하지만 정작 하도리에 머무는 동안에 이 음악을 들었느냐? 듣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나는 하도리에 있었고 음악이란 그런 것이라고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음, 그러니까 음악이란, 그리움이자 염원 같은 것, 입으로 중얼거리는 노랫말에 곧 마음이 담기는 것, 그래서 움직이게 되고 그것들이 눈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 내게 ‘하도리 가는 길’이 그랬던 것이다.

 

ps '하도리' 숙소가 먼저? '하도리 가는 길'이 먼저?

하도리 가는 길’을 들은 덕분에 하도리를 숙소로, ‘그래, 결정했어’ 선택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이야기겠냐 싶겠지만 그 결정적 순간에 대한 정확한 기억이 없다. '하도리 가는 길'을 먼저 듣기는 했지만 지명으로 하도리를 인식 했다기보다 노래를 통째로 기억했기 때문에 어느 것이 다른 것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순 없다. 

마지막까지 하도리가 남게 된 데에는 이런 과정이 있었다. 호텔 아니고, 펜션 말고, 게스트하우스는 어린이 때문에 안 될 것이고... 그렇게 아닌 건 과감히 제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숙소 주변이 너무 번화하거나 너무 관광지는 아니었음 좋겠고, 제주도 고유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 동네나 마을로 훅 들어갔으면 좋겠고, 관광객보다는 이방인이 되어 바삐 둘러보는 것 아닌 머무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고... 좋은 것을 건져 추리다 보니 그곳이 구좌읍 하도리였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풍경과 하도리가 딱 맞아떨어졌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니까 노래를 듣지 않았더라도 아마 나는 하도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노래를 들었기 때문에 몇 곳의 숙소를 보다가 한치의 망설임 없는 결정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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