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리에 가 보았어요
누구 것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팔로우 하던 sns파랑새를 좇다가 <제주, 숲의 음악> 음반을 알게 됐다. 트위터에 글을 쓰진 않는데, 대부분 공부하는 자세로 들여다 보는 걸 좋아한다. 읽고 새길 것이 너무 많고, 세상을 어디에 서서 보아야 하는지, 받아 적고 싶은 주옥 같은 글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내게 트위터란 발화의 도구가 아닌 숙독의 장이자 삶에 밀착된 자세를 갖출 수 있는 지평이랄까. 가슴을 때리고 뼈에 와서 박히는 140자들을 만날 땐 정말이지 무릎꿇고 두 손으로 전화기를 부여잡는 심정이 된다. 그래서 내가 팔로우 하는 트위터리안의 컨텐츠라면 어느 정도 믿는 구석이 느긋하게 깔려있다.
어쨌든 누군가 업로드 한 <제주, 숲의 음악>앨범 사진을 딱 보았는데, 정직한 명조체의 제목에 마음이 기울었다. 찾아 보니 백정현, 전혀 모르는 뮤지션이다. 피아노곡이라니 부담 없겠고, 제목이 또 화룡점정 찍히듯 내 맘에 콕 박혔으니 마음이 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제주’라는 말만 들어가면 일단 가볍게 울렁증이 일면서 가슴이 뛰고 손끝이 살짝 떨리는 신체로 반응한다.
사실 이 음반이 나를 좀 더 잡아 끈 건 ‘제주’도 ‘제주’ 였지만 ‘숲’에 있다. 2016년 하도리를 계기로 어쩌다 보니 매년 제주도 방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갈 때마다 오름과 숲길을 걸었는데 그 동안 몰랐던 제주도의 또 다른 자연과 아름다움, 이야기들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오름과 숲길을 잇는 기억들은 하나의 기운이 되어 다시 제주도를 찾게 했고 어떤 기억들은 제주도에 계속 머물러 있기도 했다. ‘메야? 제주의 숲이라고? 가까운 서울 숲도 아니고 콕 찍어 ‘제주, 숲’ 에, 그 ‘숲의 음악’ 이라니, 이건 완전 내 꺼다 내 꺼’,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고 주문을 마쳤다.
CD는 도착과 함께 집안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이번에도 비슷하게 석 달 열 이틀쯤 쉬지 않고 음반은 돌아갔다. 아홉 개 곡은 ‘사려니’, ‘따라비’, ‘동백동산 소리’ 같이, 숲이나 오름 이름이 제목이기도 해서 상상이 가능한 만큼 한발 더 제주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곡들은 피아노가 베이스고 바이올린과 첼로 등이 더해져 깊고 유려하면서 선율이 아름다웠다. 전체적으로 맑으면서 구슬프기도 하고 약간 쓸쓸한, 혼자서 듣기에 딱 좋은 곡들이었다. 피아노 곡 이래 봤자 멀게는 외국사람 바흐, 가깝게는 한국사람 이루마, 정도의 인식 수준에서 작곡과 연주를 완성한 백정현의 음반은 또다른 세상이나 다름 없었다.
<올 댓 제주> 음반이 나를 하도리로 이끌었다면 <제주, 숲의 음악> 은, 어떤 정신은 계속 제주에 머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다. 내 시간과 일상에도 제주도가 스며드는 느낌들. 음반을 틀어놓고 숲과 기억들을 소환했다. 간밤에 내린 비가 아직 남아있던 거문 오름의 7월 진초록이 떠올랐다. 비가 배인 숲 냄새가 너무 좋아, 있는 대로 배를 부풀리며 숨을 들이마셨던 기억, 이파리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가는 7월의 숲은 말 그대로 살아있었다. 곶자왈 지역을 지날 땐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자연의 기운이 느껴졌고 우산을 쓰다가 아예 비를 맞고 걷던 비자림, 달리던 차를 세워 계획에 없던 입장을 감행했던 절물숲, 바람이 등을 밀어주던 10월의 다랑쉬 오름도 기억을 이었다.
강아솔의 ‘하도리 가는 길’ 처럼, 이 음반에서 내가 도돌이표를 붙인 곡은 네 번째 곡 ‘가을 fall’이다. 애잔하면서도 아련한 멜로디, 유려하고 우아한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단 얘기다. ‘가을’을 듣고 있으면, 아무리 많이, 또 몇 시간씩 들어도 잘 질리지 않았다. 곡에서 가을 느낌이 확 나진 않는데 그럼 어느 계절에 맞을 것 같냐고 하면 ‘아 가을’, 하게 된다. 다른 곡들보다 유난히 이 곡이 귀에 들어온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2분 30초, 짧은 곡이지만 이 곡을 들을 때 나는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꼼꼼히 듣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연주만 듣는다. 곡은 충분히, 추억 이랄지 기억들을 떠올릴만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 애오라지 이 곡에만 집중한다. 추억 따위 떠올리지 않아도 이미 너무 아름답고 좋기 때문에. 그것이 나의 꼼꼼한 듣기랄까.
<제주, 숲의 음악> 을 들으면서, 이 음반을 제주도 숲길을 걸으며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날이 오면 꼭 음반 통째로 들어야겠다, 계획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다시 제주도, 숲으로 갔던 날, 이 곡들을 들었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다. 숲에서 열리는 귀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모습을 보여주진 않지만 또렷이 들리는 새들의 울음 소리는 여러 가지였고, 바람이 나뭇잎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도 나무마다 바람마다 다 달랐다. 숲을 밟는 내 발걸음에 따라붙는 소리도 잘 들렸고 우거졌던 나무에 바람이 불어와 살짝 하늘이 열리는 것도 소리로 감지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소리 앞에, 언제 어떻게 어디서 들려와 사라질지 모르는 제주의 숲 소리를 듣고 또 기다리는 내가 있었다. 숲의 냄새, 숲의 초록, 숲의 기운들처럼 숲이 품었다 내놓는 소리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 안에 내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음악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제주, 숲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이 음반을 알고서야 숲에도 소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숲으로 음악을 가져가서 들을 순 없었지만 작가도 나처럼 숲을 간직하고 싶어서 음악을 만들었을테니 모두 다 숲의 소리이고 숲의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