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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한 유니씨 Jul 23. 2022

'여름 오름에서 배운 것'

책과 나 사이에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시를 잘 읽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혼자 밥을 먹거나 낯선 곳에 있거나 보고 싶던 풍경 앞에 섰을 때, 떠오르는 시 한 두 편쯤 꺼내 외울 수 있다면. 좋아하는 시를 중얼거리며 시간을 기다리고, 강을 산책하며 되뇌는 구절이 있었으면. 하지만 그만큼 잘 안 읽게 되는 게 또 시집이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연과 연 사이의 은유를 알아채기가 힘들다는 게 아마 가장 큰 이유가 아닐지. 소설이나 에세이 등 서사를 드러내는 글이 수동적인 읽기라면 시는 나에겐 지극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읽기이다. 읽는 것 자체가 뭐랄까 글자를 따라가는 것 말고도 또 다른 노력과 애씀이 들어가야 한다고나 할까.



그렇게 보면 시야말로 지극히 주관적인 글쓰기 같지만 사실 더 없이 인터렉티브한 문학이 아닐까. 작가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입 벌리고 앉아 듣는 것과는 달리, 아예 작가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입을 앙 다물고 작가의 은유와 상징을 알아채는 일.


아, 생각만 해도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알아내려 해도 당최 이게 어렵고 잘 안 된다면... 에세이나 소설을 읽겠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아, 에세이와 소설 폄하 절대 아니다, 그저 책 읽기의 게으른 한 단면을 숨기고 싶은 핑계일 뿐이다. 어느 글이든 글이란 주관적이고 읽기란 적극적이다. ㅎ




여름여름여르음~ 여름에 태어난 나는 여름을 좋아..했는데, 몇 년 전부턴 너무 더위를 타서 겨울이 좋아지려 한다. 친구를 기다리며!



각설하고,


안희연 작가는 처음 알았는데 이 시집은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여름 언덕이라니, 여름 언덕 하면 알아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한낮의 태양, 더위와 땀, 뜨거운 공기와 어떤 절정의 순간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언덕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 이런 느낌이라면 나도 좀 느껴보았다. 여름 한복판에 오름에 올랐을 때 반응하던 나의 오감들이 어렵지 않게 연상되었다. 온몸의 땀구멍이 열려 땀을 쏟아내고, 땡볕은 거침없이 내 머리위로 떨어져 달궈진 생명체가 되며, 점점 가빠지는 숨소리가 세상 제일 크게 들리고 아무리 멀리 시선을 두어도 막힘없이 뻗어나가는 시야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들. 그리고 바로 그때 마법같이 내 몸을 감싸고 등을 살짝 밀어주던 그 바람의 맛이란!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집이란 이다지도 간편하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어느 면을 펼쳐 읽어도 그곳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가 들어있는 시집. 여러 번 읽어도 잘 모르겠고, 앞 구절과 대체 어떻게 이어지는 뒷 구절인지 이해가 안 되어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시를 읽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어쩔 수 없는 일은 말 그대로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을 하나의 특성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밖에.



여름 오름에서 맛본 것! 왼쪽: 2018년 7월 다랑쉬오름/ 오른쪽: 2019년 5월 다랑쉬오름



편편의 시들이 읽을수록 새롭게 읽히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같았고 그래서인지 가장 좋았던 한 편을 고르기가 힘들었다. 시간, 슬픔, 죽음 같은 단어들에 가까이 간 시가 많았던 것 같은데, 살아서(살아있음으로) 겪어야 할 과정, 그리고 지향점이겠다 싶어서, 이 시집은 좀더 삶에 밀착된 이야기들로 읽혔다.


도서관에서 줌으로 열린 작가와의 대화를 20분밖에 듣지 못했는데, 작가가 생각하는 슬픔을 이야기했다. 작가는 슬픔이 꼭 나쁘거나 안 좋은 감정이 아니라고 했고, 아름다워도 슬플 수 있다, 매 순간이 슬프다, 기승전슬픔... 이라고 표현했다. 화면으로 본 작가는 목소리도 크고 말(강의)도 잘 했으며 질의응답에도 성실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고, 시야말로 그렇게 타인에게 즉각적인 신호를 보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했다.


앞으로도 어렵게 또는 읽다 말다하면서, 펼쳤다 닫았다, 이게 시야 뭐야 하면서 시를 읽을 것이다. 그리고 또 여전히 시를 그리워 할 것이다. 사진으로 잡아내기 모자란 풍경을 마주하거나, 여행하고 시간을 견디고 미운 사람을 마주해야 할 때... 꺼내 외울 수 있는 시를 갈구할 것이다. 입 안에 한 두 편쯤 맴도는 시를 찾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시, 나도 어쩔 수 없이 또 그렇게 할 것이다,



2. 가장 마음에 든 시와 그 이유(가장 맘에 든 시는 22일까지 시낭송 하셔서 카카오 음성메세지 나 녹음 파일로 올려 주세요.) 혹시 블로그에 음성파일로 올리고 싶으면 그것도 가능 합니다.


: 마지막 시 <열과 裂果> 이유는, 균형이랄까 조화로움이랄까, 끝과 시작이 순환하고 어떤 경우이든 다 소용 닿고 쓸모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세상의 일들, 지킬 것이 많은 자만이 아니라 잘 잃어버릴 줄 아는 사람도 문지기이며, 작열하는 태양과 장마를 대등하게 보고 터진 열매들로 더러워진 바닥에서부터 여름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것들이 그렇게 느껴졌다.




3. 제3부에 ‘측량’ 에서처럼 수신인을 알 수 없는 상자가 배달 된다면 열어보실지?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지? 상자가 움직이고 사랑이 배달 된 거라면 그 생명을 어떻게 하실지?


: 당연히 열어볼 거고, 상자가 움직이고 사랑이 배달되었다... 요즘 같아서는 주인을 찾아 나를 픽한 견이나 묘였으면 좋겠다 싶고ㅎㅎ(내가 찾아나서기는 용기가 나지 않으므로..), 그 사랑이라면 기꺼이 그 생명을 내 곁에 둘 것이다.



4. 이 책에서는 총 4편의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가 나옵니다. 각 편에는 할아버지가 등장하는데요. 각 편에서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하는 말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무엇인가요?


: 인상 깊었던 말 보다는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이 할아버지가 왜 네 번이나 나오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첫 번째 편에서 뭔가를 '쪼개 작게 만들어 깊숙한 곳에 감춰야 하'는 할아버지가 그나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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