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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한 유니씨 Nov 15. 2023

나의 아끼고 오래 지니인 것 (#나아끼지)


할머니 가디건을 내가 입는다. 할머니 옷은 나이대로 보나 핏으로 보나 나보단 엄마가 임자일 것 같지만 개인의 취향이란, 그러려니 싶은 상식이나 편견을 명쾌하게 가려낸다. 요 옷은 엄마를 건너뛰어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옷을 입던 할머니 모습이 환하게 기억난다. 사진 속 시간이 1988년, 십 대였던 나는 오십을 넘어섰고 할머니는 십여 년 전 삶을 마감했다. 35년이란 시간은 같이 살던 사람들을 생과 사로 가르기에 충분하니까.


가디건은 니트 소재인데 아직까지 어디 한군데 늘어나거나 뜯어짐 없이 고유의 쫀쫀함과 변형 없는 핏을 유지한다. 자고로 좋아한다는 건 아낀다는 것. 옷 좋아하는 사람은 옷을 아껴 입을 뿐 아니라 빨래나 보관에도 기꺼운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할머니, 오빠, 엄마. 모녀의 공통점이 한눈에 딱 보인다. 두 분 다 클러치백이다 :D


할머니와 엄마는 옷에 대한 애정과 예의가 남달랐다. 할머니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끼고 절약하는, 식민제국과 전쟁을 통과한 그 시대 전형적인 할머니였지만, 옷만큼은 당신의 취향을 따랐다, 조금 비싸도 마음에 들고 좋은 옷을 선택, 그 옷들을 아껴서 오래 입었다. 실내복과 외출복을 구분했고 외출복은 옷솔로 탈탈 털어 옷걸이에 걸었다(여러분, 옷솔 아시나 옷솔? 구둣주걱과 옷솔이 신발장 언저리에 자리를 차지하던 시절. 파리채는 옵션). 또 집안일을 할 땐 앞치마와 토시를 쓰셨다.


여기서 한술 더 뜨는 사람이 엄마. 엄마는 30년 직장 생활 동안 외출복 대부분을 지인에게 맞춰 입었는데, 옷 선이 쳐지거나 흐트러질까봐 투피스 재킷이나 슬랙스 주머니에 토큰 하나 넣지 않았단다(스커트엔 아예 주머니를 만들지 않았다고). 출퇴근 가방도 숄더보다는 손에 드는 것으로, 원피스나 재킷 어깨의 구겨짐을 막았다(마이카 시대 한참 전이라 콩나물 버스에 실려 다니던 시절). 학교 다닐 땐 교복 구겨지는 게 싫어 버스 자리가 나도 잘 앉지도 않았다니, 모냥 빠지는 옷을 미연에 방지하고 옷차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태도나 예의를 보인게 아니었을지.


출장이나 여행 가기 전날 밤이면, 옷을 챙기며 하나하나 다림질하던 엄마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코드 뽑은 다리미 잔열로 잠옷까지 꾹꾹 눌러 가던 엄마였으니. 인상적인 장면은 또 있다. 엄마는 목이 올라오는 블라우스나 스웨터를 잘 입었는데, 이것들을 벗을 땐 손수건보다 조금 큰 보자기 같은 걸 목과 옷 사이에 끼워 넣고 벗었다. 얼굴의 화장품이 옷에 묻을까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세상 유니크하고 간지 작살인, 할머니 가디건



나도 둘째가라면 서럽게 옷을 좋아한다. 특히 이 옷은 돌아가신 할머니 유품인 것도 의미가 크지만, 옷 자체가 이미 시대를 초월한 멋스러움이 있고 스타일도 전무후무 유니크해서 딱 내 취향이다. 35년이라니, 어떤 생명력마저 느껴지는 이 옷을 할머니는 대체 어떻게 들이게 되었을까.


엄마의 기억을 빌자면 할머니가 떴을 것 같지는 않고(할머니는 뜨개질을 잘하셨고 옷도 많이 뜨셨다. 다만 똑같은 모양으로 색만 다른 초록이가 하나 더 있었다는 점에서 할머니 손 뜨개 설은 혐의를 벗는다. 불행히도 초록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뜨개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자체 제작, 꽤 두둑한 비용을 들이지 않았을까, 가장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할머니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당신의 취향과 개성, 갈고 닦고 아끼는 정성이 담뿍 담겨 클래식이 무엇인지 만들고 보여주셨다. 나도 할머니와 엄마처럼 아껴 입고 오래 입는, 옷 좋아하는 본연의 자세를 다시 갖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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