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리에살아보았어요
<1205>
2박을 북촌리에서 보내고 이제 서울로 가야한다. 3일 내내 여기는 바람이 어마무시 불었다. 마당에 드나드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데, 가벼운 플라스틱 통에 고양이 사료를 담아 곳곳에 두면, 아이들이 와서 먹기도 전에 다 뒤집어지고 날아갈 만큼 바람이 세다. 면식들이 있고 적극적인 두 세 분에겐 밥그릇을 손으로 잡고 주어도 잘 잡숫는다. 드나드는 칠냥들은 인간이 밥 준다는 걸 아는데다 몸사리지 않고 다가오는 분들도 있어, 나의 쓸모를 인정했을 테다. 다만, 밥을 잘 먹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먹던 밥도 팽개치고 반대쪽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위해 마당의 담벼락과 돌덩이들을 이용, 밥 그릇을 고정시켰다. 먹는 일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이번 2박은 3주만인데, 그때까지 가장 어리고 야위었던 그래서 내 기준 ‘쪼꼬미’라 불렀던 남아가 넘나 토실토실 성장한 모습이었다. 문을 열고 마당에 내랴서기 무섭게 다다다 내쪽으로 와 앉아, 밥주게? 빤히 올려다보는 것도, 내가 이뻐하는 여아에게 추르를 먼저 주면 앞손으로 내 손을 탁탁 치는 것도 아쭈, 얘 쪼꼬미였다. 덕분에 엄지와 검지 중간 부분에 이 쪼꼬미의 긁힘이 정표처럼 남았다.
이곳에 고양이들이 오기 시작한 건 작년 가을부터라고 한다. 세 명으로 시작된 식객들은 점차 수가 늘었고, 지난 9월에 왔을 때 칠냥 고정 게스트가 된 것 같다. 아이들은 12월의 뒤집어지는 바람에도 다들 괜찮아 보였고 9월만해도 완전 아기였던 그 '쪼꼬미'는 앞발 탁탁으로 급식자의 환기를 유발할만큼 활달한 소년이 되었다. 많이 컸네 소리가 절로 나는 등, 아이들 대부분 왔다갔다 하는 걸 보고 있자니, 굶지 않고 잘 살고 있었구나 길냥들의 삶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한 두 명 정도가 안 보이는데, 처음엔 잘못되지 않았을까 걱정이 앞서다가도 급식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을 수도 있겠다 싶은 바람이 먼저 들기도 했다. 고양이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가벼운 차림으로는 10분 이상 서 있기 힘든 12월의 대기 속에서 얘네들은 어떻게 밥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잘까. 처음엔 갸가 갼지 야가 얀지, 얘가 눈군지 헛갈리며 시작된 만남은 왼쪽 귀가 까만 색이고 꼬리에 선 무늬가 있고 이마 털색이 다르고... (외형이긴 하지만) 각자의 다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곁에 오는 아이들, 꼭 먼저 와서 소리내고 발라당 눕는 냥들을 알아가며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123내란사태, 서울의 그 난리났던 밤에도 나는 마당에 내려와 냥들의 밥먹는 모습을 보며 별이 가득한, 까맣고도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마당을 걷고 바람의 소리를 듣고 다시 빈 밥그릇을 채우는 시간들, 그 속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1317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