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리에살아보았어요
- 첫날- pm 5: 54 택시가 주차장앞에 멈추고, 기사님께 여기 내리겠다, 기사님 여기서 차 돌리시면 된다 하니 알겠다며, 아이고 고양이가 마중나와 있네 하신다. 누굴까 궁금해서 얼른 내리면서 보니.... 미녀다!
순간 못 알아볼 뻔 했는데 너무 작아져 있었기에 ㅠㅜ. 다가가니 피하진 않고 날 올려다 본다. 가자고 말하면서 내가 먼저 발을 옮기니 앞장 서서 담벼락쪽으로 올라가 멈춘다. 다가가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부르며 근황을 물으니 냐냐 소리를 내는데 목소리가 잘 안 나오는 것 같다. 내가 집 방향으로 움직이자 돌담에서 내려와 나를 따라 온다. 담벼락을 돌아 대문 앞으로 뛴다. 너무 예쁘다. 어쩌자고 근데 많이 말랐다. 뱃살은 빈 가죽으로 쳐져서 덜렁거린다. 이윽고 문앞에 이르러 미녀야 들어가, 밥 줄께, 하니까 멈춰서 보다가 담을 훌쩍 넘는다. 얘는 꼭 대문 놥두고 넘어들어간다. 대문은 너같은 인간이나 드나들지, 알려주려는 것 마냥. 마당 안에 멈춰서 아직 문밖인 나를 계속 본다. 예쁘다.
나는 철망문을 열고 들어가 현관 자물쇠를 따고 캐리어를 들여놓자마자 얼른 열어, 동친에게 받은 특식을 꺼내고 주방으로 달려가 말려둔 밥그릇을 들고 나온다. 이런 나의 움직임을 미녀는 문밖에서 바라보며 기다린다. 미녀가 기다리는 마당으로 내려가려니 벌써 달려든다. 가만있어봐, 내가 뭘 가져왔냐면, 쩍! 캔을 하나 따서 밥그릇에 부어 미녀 앞에 내민다. 참치 수프다. 미녀가 바쁘게 먹는다.
미녀가 먹는 일에 집중할때 찬찬히 미녀를 본다. 왜케 야위었니. 뱃살은 가죽만 쳐져서 흔들리는 것 같이 빈 배같다. 그렇다면 우려대로 출산을 한 것일까? 출산을 했다면 혼자서 차 밑에 엎드려있진 않을 것 같은데. 캔을 거의 다 먹고 -아직 아무도 오지 않는다- , 내가 먹어도 될 것 같고 나도 먹고 싶은 열빙어(촉촉 트릿) 통을 따서 한 마리 꺼내자마자 내게로 오는 미녀에게 바침, 너무 잘 먹는다. ㅠㅜ
지난번 마데카솔 발라줬던 상처는 아물었다기 보다 그대로 마른 느낌이다. 더 번지지는 않았고 새 살도 올라오지 않았기에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지난번엔 안 보였던 왼쪽 옆얼굴로 또 패인 흔적이 있다. 이게 단순히 싸움의 결과인건지 피부병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잘 먹고 활발히 움직이는 등 행동에는 큰 변화가 없는 걸로 봐서 병은 아닌 것 같아, 그러니 더 안됐다. 누군가에게 입은 상처라고 생각하니.
얼굴도 조그매졌고 위에서 위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골격이 드러난다. ㅠㅜ 미녀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떤 거니.
사진을 몇 장 찍어 동친에게 전송, 미녀 이야기를 나눈다. 동친은 몇 년 전 집사가 되었고, 미녀들 갖다 주라고 자기 고양이가 안 먹는 간식과 자기 고양이 주려고 사면서 더 샀다는 먹거리를 받자와 (캐리어 안 끌고 오는데 캐리어에)쟁여 온 참이다. 길에 살면서 이런 간식들 먹어보긴 했을까, 집에 사는 고양과 길에 사는 고양은 참 달라도 눈물나게, 너무 다르다. ㅜㅠ
와중에 열빙어 두 개 순삭한다. 가져간 사료 부어준다. 잘 먹는다. 미녀야 많이 먹어, 나 있을때라도 잘 먹자.
둘째날- am 6, 화장실 나가다 보니 드디어 호동이 납셨다. 밥그릇이 비어있어 먹이 부어 준다. 호동이도 말라 보인다. 여기도 비가 많이 왔다는데 제대로 못 먹고 다녔을까. 사료 부어주고 미녀랑도 인사한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는 어디로 사라졌다.
고양이들은 밥 때 나타서 밥 먹고나면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지난 번에는 애들이 더웠는지 다들 쳐진채 바닥에 누워 움직이지도 않더니.
그나저나, 기다리는 한 명은 아직 오지 않는다. 철학이- 창현이 형이 붙인 이름은 뚱이-는 왜 안 올까. 지난 번도 그 전 번도 한쪽 눈이 불편해 보이고 말랐다 느껴질만큼 (먼저 이름은 뚱이였다는데!) 야윈데다가, 여러 장 찍은 사진 중 어떤 한 장에 보이는 이빨, 아랫니가 거의 없고 침을 흘리는 모습... 구내염일지도 모른다는 동친 말에 어째드려야 되나... 오면서도 얼른 만나길 바랐다. 보면 번번이 미녀보다 먼저 나타나는 갸였어서, 왜 아직 안오나... 아직이다. 오늘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