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스타그램을 하던 사람이던 아니던 아기가 생기면 아기 전용 계정을 별도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아기용품 브랜드 마케터이다 보니 #아기스타그램 #육아스타그램 콘텐츠를 많이 찾아보게 되고, 계정 알고리즘도 알아서 그런 콘텐츠들을 골라서 보여준다.
많이 보다 보니 #육아스타그램 사진에도 나름대로의 유행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인 수치 UP! 지지직 거리는 필터
을지로 필터를 넣어봤다
작년에 많이 볼 수 있었던 스타일이다.
그레인 수치를 바짝 높이거나, 스노우 앱의 레트로 서울 5개 필터 중 1개를 입혀 지지직 거리는 거친 질감이 느껴지는 사진.
더불어 거실 전체 샷보다는 커튼이 반쯤 쳐진 창문 일부, 장난감이 흐트러진 옆 아기의 통통한 다리, 간식 위로 뻗는 아기의 손 등 굉장히 당겨 찍은 사진에 이런 필터를 추가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한창 이런 스타일 사진이 유행할 때는 난감한 경우도 가끔 있었다. 그 사진이 해당 계정에서 볼 때는 다른 사진들과 어우러져 무척 분위기 있어 보이지만, 마케팅 용도로 활용하려고 하면 제품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브랜드 SNS에 포스팅하기에는 이전에 올렸던 제품 사진들과 해상도 차이가 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예쁜 사진이지만 아쉽게 패스한 적도 있다.
영문 레터링
필기체가 예쁠 때도 있고, 좀더 반듯한 폰트가 예쁠때도 있다
올해 들어 많이 보인다. 사진에 제품명, 아기 이름 등을 영문 텍스트로 넣은스타일.
잡지 같은 느낌도 나기도 하고, 2% 부족하게 느껴졌던 감성이 영문 레터링을 넣음으로써 채워지는 느낌이다. 제품 구매 페이지 그 어디에서도 우리 제품명을 영문으로 표기해놓지 않았지만 체험단이나 고객분들이 알아서 제품명을 영어로 번역하여 사진에 추가해주신다.
이 경우에는 원본 사진을 전달해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요청하기도 한다. 영문 레터링이 너무 예쁘지만 모든 분들이 같은 폰트를 쓰는 것이 아니기에 모아두면 통일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보통 광고 카피를 넣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자리에 영문 레터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겨 찍기
하늘도 당겨찍기
기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임의로 확대한 것과 애초에 당겨 찍은 사진은 느낌이 아예 다르다. 카메라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용어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2배 이상 당겨 찍으면 소위 말하는 '인스타 감성'이 좀 더 사는 느낌이랄까?
나도 인테리어가 멋진 카페에 가거나, 예쁜 소품을 발견하고 '이거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좋겠다' 생각이 들면 2배줌 혹은 그 이상으로 당겨 찍는다.
육아스타그램 계정에서도 아기의 통통한 손, 볼, 뒤통수 등 신체 일부만 당겨 찍은 사진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공식은 제품 사진에도 적용되어 제품 전체 모습을 가늠할 수 없는 후기도 자주 보인다. 예쁘고 감성적이지만 피드에 사진을 5개 올린다면 그중 1개만이라도 전체 제품이 한눈에 보이는 구도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라탄, 원목, 패브릭 소품 그 외
육아스타그램에서 유독 자주 보이는 소품들도 있다. 아무래도 라탄, 원목 재질 소품이 따뜻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많이 보인다. 창문 너머 햇살이 은은하게 비치는 리넨 커튼도 너무 예쁘다. 나도 제품 피드를 찍을 때 이런 소품들을 많이 쓰는데 가정에서 이런 소품들을 다 가지고 계신 걸 보면 가끔 신기하다.
그 외에 정말 자주 보이는 브랜드 제품들이 있다. 회전 책장으로 유명한 A 브랜드, 원목 바운서로 유명한 B 브랜드, 유아 텐트로 유명한 C 브랜드, 원목 베이비룸으로 유명한 D 브랜드.. 협찬, 이벤트 상품으로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실제 구매하신 분들도 많아서 '와 이 제품들은 이 브랜드 효자상품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진 콘셉트를 기획하고, 모델이 될 우리 아기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리본이나 모자를 씌워주고, 배경을 꾸미고 정리하고. 그렇게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걸 '아기와 함께'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우리 아가들이 항상 웃고, 원하는 자세로 멈춰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건지려면 수십수백 번의 촬영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다가 아가가 응가라도 하면 다시 기저귀 갈고 옷 입히고...
잘 관리된 육아스타그램을 보면 콘텐츠 퀄리티에 한 번 감탄하고, 그 과정을 매번 해내고 있는 엄마아빠의 인내심에 한번 더 감탄한다.
나도 우리 아기 사진만 올리는 계정을 따로 갖고 있지만 그냥 기록용이고, 그 마저도 마지막으로 올린 게 지지난주인가? 인스타그램 관리가 내 업무니까 콘셉트를 정해서 각 잡고 사진 찍고 글을 쓰는 거지 우리 아기 계정을 그렇게 운영하라고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