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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손의 비애

일이 불어나는 속도도 빠르다

by 솔의눈

나는 일할 때 고민을 길게 하지 않는다.


정기적인 업무든, 대표님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갑작스러운 프로젝트든 일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찾아나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팀장님이 머리를 싸매는 업무에 대해서도 실무자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재빨리 고민해보고 기획안으로 정리해서 보고 드렸다. 그간의 경험상 오래 고민한다고 해서 더 좋은 방안이 나오는 게 아니라서, 일단 방향성만 정하고 업무를 해나가면서 구체적인 부분은 조정해나가는 편이다.


상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업무 스타일이 세상 편할 것이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되고 가 아니라 '우선 이렇게 해보고 안되면 말씀드릴게요'하면서 일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상사의 상사님이 '그때 그거 어떻게 되고 있어'했을 때 최소한 진행되고 있다는 대답을 할 수 있으니까.


빠른 업무 속도는 직장생활 내내 나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상사의 피드백에서도 늘 '빠른 업무 속도, 빠른 피드백'이 가장 먼저 나오고, 나 스스로 이력서를 쓸 때도 그 내용을 제일 먼저 썼다. 이렇게 일 잘하는 나!라고 생각하며 내심 우쭐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정말 강점이 맞는 걸까 생각을 하게 된다. 업무를 빠르게 처리해내는 만큼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는 빈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을 빨리하니까 일을 많이 주는걸 처음에는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 봤자 근무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살짝 벅차긴 해도 좀 더 속도를 높이면 감당할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내 담당 업무가 맞나? 싶은 일까지 내 손에 떨어진다.


팀장님은 지난 면담에서 일처리가 빠른 팀원에게 일을 몰아주지 않도록 유념하겠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업무를 누구에게 주겠는가. 결국 그 일을 받는 사람은 나다.

원래 내 것도 아닌, 대표님이 닦달해서 당장 어떤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는 그런 일들이 모두 내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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