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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분수대 머리로 묶어주세요"

5살이 되니 취향이 생겼다

by 솔의눈

다섯 살 답지 않게 여전히 아기 같은 외모와 체격의 소유자인 우리 딸. 체격도 체격이거니와 태어날 때부터 열심히 기른 머리카락은 여전히 어깨에도 닿지 않는 수준이라 데리고 다니면 3살 정도로 보는 분들이 많다.


다른 친구들처럼 양갈래로 땋거나 화려한 머리 모양을 할 순 없어도 세 갈래로 묶었다가, 도깨비 뿔 모양으로 묶었다가 매일매일 다른 머리 모양으로 묶어주는 게 내 기쁨이다.


우리 딸은 머리를 묶는 잠시 동안 TV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아직 취향이랄 게 없어서 불편하지만 않으면 엄마가 해주는 머리 모양 그대로 잘 있어주었다.


하루는 낮잠 자는 동안 머리가 다 헝클어져서, 오후에는 덥지 말라고 간단하게 머리 꼭대기 한가닥으로만 묶어주었다.


놀다가 문득 방에 있는 거울에 비친 본인 모습을 보더니


엄마, 내 머리가 꼭 분수대 같아


라며 까르르 웃었다. 나도 "그러네~ 꼭 분수대 같네"하고 맞장구 쳐주었다. 그리고 한참 뒤 저녁, 목욕 후에 방에서 머리를 말려주는데 갑자기 본인 머리를 보더니


내 머리에 분수대가 없어졌잖아 이이잉


하며 울상을 짓는 것이다.


"이제 잘 거니까 내일 아침에 또 분수대처럼 묶어줄게"라고 달랬더니 울음을 장전하며 분수대 머리로 묶어달라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딸은 잘 때 머리에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 조금이라도 시원하게끔 머리카락을 묶어주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다. 하지만 머리핀이든 끈이든 누웠을 때 머리에 뭔가 걸리는 느낌을 무척 싫어해서 '잘 때는 머리를 풀어준다'가 공식처럼 되어버렸었다.


그런데 오늘은 머리를 묶어달라는 것도 모자라서 "머리핀 꺼내 줘"라며 벽장문을 열어 분홍색 리본 머리핀까지 야무지게 고르는 게 아닌가.


할 수 없이 머리카락을 정수리 높이 분수대 모양으로 묶어주고, 분홍 리본핀까지 꽂아주니 무척 만족해하며 드레스룸 거울 앞에서 춤까지 추는 우리 딸.


며칠 전에는 애들용 드레스(엄마들은 질색팔색 하는 그런 드레스..)와 장신구를 파는 가게 앞에서 레이스가 잔뜩 달린 드레스 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수아도 공주님 드레스 입고 싶어..." 하던 딸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또래 친구들 중 몇몇은 벌써부터 '공주병 시기'가 찾아와서 어린이집 농장체험을 가는 날에도 하늘하늘 드레스를 입고 온다. "드레스는 조금 더 언니가 되면 입자"라고 하면 떼쓰지 않고 드레스 가게 앞을 떠나는 우리 애를 보며 나는 내심 안도했었다.


하지만 원하는 머리 모양을 말하는 모습에 '우리 애도 조금씩 취향이라는 게 생기는구나' 싶은 게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좀 섭섭한 마음이 든다.

다른 애들보다 많이 작다 보니 아직도 한참 아가라고만 생각했는데, 엄마가 아기처럼 안고 다니는 사이에도 조금씩 크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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