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노트 앨범을 보면 딸아이 반에 늘 드레스를 입고 오는 친구가 있다. 어떤 날은 겨울왕국 엘사 드레스, 다음 날은 라푼젤 드레스, 미녀와 야수 벨 드레스..
여자아이들은 4~6살쯤 '공주병'이 찾아온다. 복댕이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핼러윈데이 행사 때 입으라고 백설공주 드레스와 구두를 사줬을 때 어찌나 행복해하던지. 특별히 공주옷 사달라고 표현은 안 했지만 친구들이 입고 오는 옷들이 아이눈에는 예쁘게 보였나 보다.
내 취향은 무채색에 심플한 옷이지만 아이가 행복해하니 공주옷 한두 벌쯤은 사줄 수 있다. 하지만 가슴팍에 시크릿쥬쥬, 엘사 공주가 대문짝만 하게 새겨진 꽃분홍 원피스만은 피하고 싶었다. 아무리 귀엽게 봐주려고 해도, 너무 촌스럽고 유치해 보였다.
마트, 백화점에서 지나가는 길에 캐릭터그림이 그려진 원피스를 보고 아이가 '와 예쁘다'하고 만지작거린 적이 몇 번 있다. 다행히 '이건 언니들이 입는 옷이야. 아직 복댕이는 작아서 못 입어'라고 하면 떼쓰지 않고 순순히 넘어가주었다. 내심 '우리 애는 공주병이 안 올 건가 봐'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공주병이 안 오는 게 아니라, 아직 안 온 거였다.
오늘 복댕이 잠옷을 사러 친정엄마랑 셋이서 백화점에 갔다. 아동복 매장이 있는 2층에 올라가자마자 온통 핑크와 레이스가 가득한 공주옷 매장이 보였다. 복댕이는 '시크릿쥬쥬 드레스..'를 외치면서 홀린 듯 매장으로 들어갔다. 노련한 직원이 '이거 어때요?'라며 원피스 하나를 꺼내 들었다. 가슴에 시크릿쥬쥬 그림이 프린팅 되어 있고, 치마는 핑크레이스, 어깨에는 레이스 퍼프소매, 온통 핑크색.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공주드레스였다.
"우리 잠옷 먼저 사고 오자"
"다른 가게에 더 예쁜 드레스 있대"
친정엄마와 나는 관심을 돌리려고 애썼지만 이미 시크릿쥬쥬 드레스에 꽂힌 복댕이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시크릿쥬쥬~ 시크릿쥬쥬우우~!!!"
억지로 매장을 나서긴 했지만 복댕이는 잠옷 사러 가는 길 내내 울며 도망가고, 주저앉으며 내 혼을 쏙 빼놓았다. 이모, 할머니뻘의 백화점 직원분들이 웃으며 '그런 때가 있다'라며 나를 위로했다. 친정엄마조차 '그냥 하나 사줘라'며 혀를 내둘렀다. 매장 사이사이로 도망 다니는 복댕이를 잡으러 다니느라 추운 날씨에 후리스 하나만 입었는데도 머리맡에서 땀이 뻘뻘 났다.
결국 잠옷을 사지 못하고, 다시 공주옷 매장으로 돌아갔다. 매장직원은 돌아올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우리 한번 입어보자'라며 아까 그 옷을 꺼내 들었다. 꿈에 그리던 시크릿쥬쥬 원피스를 입고 공주거울 앞에 선 복댕이. 원피스가 봄옷이라 아직 추울 것 같았는데, 직원이 '이거 세일 중인데 같이 입히면 예뻐요'라며 분홍색 가디건을 들고 왔다. 가디건까지 세트로 갖춰 입은 복댕이는 이제 액세서리 코너로 가서 목걸이를 고르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려고 하는데 직원이 '그건 파는 게 아니에요~'라며 선을 그어주었다. 목걸이까지 권하면 솔직히 좀 화날 뻔했다. (시크릿쥬쥬 원피스는 소재에 비해 생각보다 싸지 않았다.)
복댕이는 '공주 구두'까지 사고 싶어 했지만 집에 있는 백설공주 구두의 존재를 일깨워주니 순순히 따라 나왔다.
원래 입고 있던 노란 바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크릿쥬쥬 원피스를 입고, 잠옷 매장으로 돌아갔더니 직원이 '결국 샀네 샀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매일 입겠다고 하진 않겠지?"라며 걱정을 했더니 친정엄마는 "매일 빨아 입히다가 결국 한벌 더 사게 되는 거지~"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요맘때 아니면 이런 옷 입을 일도 없다나. 난 평생 안 입길 바랐는데.
복댕이는 다음 주 어린이집에 갈 때 시크릿쥬쥬 드레스를 입고 갈 거라며 기대에 부풀어있다. 조만간 어린이집에서 시크릿쥬쥬총회가 열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