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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의눈 Apr 04. 2023

38.4도, 불편한 휴식

아이가 열나던 날

아이가 아픈 날은 집안이 어색하리만큼 조용하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쌩쌩했는데 갑자기 열이 나다니.

어린아이들의 컨디션은 참 예측하기가 힘들다.


다음 달에 결혼하는 친구가 청첩장을 준다고 해서 점심약속을 잡은 날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가면 친구와 대화도 제대로 못할 것 같아서 두고 나가려고 했지만, '꼭 데리고 와!'라는 친구의 말에 용기를 냈다.  


전날밤 내내 기침을 심하게 한터라 일요일에 문을 여는 유일한 소아과에서 오픈런 진료를 받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모래놀이카페에서 잠깐 놀고 있으니 친구가 도착했다. 아이가 직접 고른 쌀국숫집에서 몇 가지 메뉴를 주문하고, 좋아하는 만화를 틀어주었다.

원래 밥 먹을 때 TV를 보여주지 않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TV 보는 대신 밥 잘 먹기 약속!'을 하고 미리 태블릿 PC를 챙겨간 터였다.


처음 한두 입은 잘 떠먹던 아이가 점점 엎드리더니 떠먹여 주는 것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입술이 새하얗고 힘도 없어 보였다. 친구가 걱정할까 봐 '졸릴 시간이라 그런 거 같아'라고 웃어넘겼지만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있는 것 같았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나를 배려해서 지하철 1시간 거리를 달려온 친구였다. 밥만 뚝딱 먹고 헤어지기에는 너무 미안했다.

"소파 있 카페로 갈까? 무릎 베고 재우면 될 것 같아"

라고 하며 1층에 있는 디저트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다행히 낮은 소파자리가 남아있어서 아이를 눕혔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그동안 친구의 결혼준비 이야기도 듣고, 청첩장도 받았다.

평소 같은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이 축 쳐져있는 아이를 보니 안쓰러우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방해받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친구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옷을 갈아입히고 침대에 눕혔다. 열을 재보니 38.4도였다. 카페에서 집에 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 잤는데 열에 취해 금세 또 잠이 들었다.


신랑은 주말근무를 나가고 아이는 계속 자니 집에 혼자 있는 것 같았다. 반찬은 어제 다 만들어뒀고, 세탁기도 미리 돌려둬서 집안일도 할 게 없었다.

할 일이 없어서 유튜브를 조용히 틀어두고 운동을 했다. 중간중간 기침을 하며 깨긴 했지만 토닥여주니 금방 다시 잠들어서, 저녁때까지 어색하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아픈데 엄마는 편하게 쉰다니..


왠지 엄마로서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온전히 휴식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주어진 혼자만의 자유시간이었다. 괜히 아이가 누운 침대방에 가서 기웃거리며 열도 한번 더 재보고, 등도 쓸어주었다. 하지만 이젠 열이 조금 떨어져서 해열제를 먹일 수도 없고, 자는 아이를 깨워서 뭘 할 수도 없어서 다시 거실에 나와서 TV를 틀었다.

아이가 숨바꼭질을 하느라 소파헤드를 다 눕혀놔서 머리를 기대고 앉을 수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소파헤드를 올려 온몸을 기대고 앉아있는 게 편하면서도 무척 어색했다.


우리 아기 열이 빨리 내렸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과, 이 조용한 휴식을 조금만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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