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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의눈 May 07. 2023

직장인의 체육대회 vs 학부모의 운동회

내 아이가 보고 있다

나는 회사 체육대회의 에이스였다!


운동신경이 엄청 뛰어나진 않지만 운동과 담쌓은 다른 직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꾸준히 운동한 덕을 톡톡히 봤달까. 계주에서 상대팀을 추월하며 결승선을 통과하자, 전날 과음으로 헉헉거리던 40대 과장님은 나를 '체육인'이라며 추켜세웠다.


'체육인' 타이틀에 한껏 취한 나는 어린이집 운동회가 열린다는 공지에 의욕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회사 체육대회와 어린이집 운동회는 예상보다 많은 차이가 있었다.


우선 아이가 낯선 장소와 많은 사람에 긴장했는지 울며불며 내 품에 매달려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게임에 참여도 못하고 구경만 해야 했다. 응원전에서 운 좋게 선물을 하나 받았더니 그때부터 계속 선물을 찾으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가 선물 타올게! 엄마 믿어!"

호언장담을 하며 줄다리기 경기에 출전했는데, 예상보다 격렬한 몸싸움에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겨우 경기장에서 빠져나왔더니 아이는 '엄마 넘어졌떠!!'라며 대성통곡을 하고, 신랑은 그걸 달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엄마 달리기에서는 도착지점에 놓인 선물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이 어찌나 치열한지 그 싸움에 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결국 멋쩍게 웃으며 빈손으로 아이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내 체육대회웬만큼 큰 상금이 걸려있지 않는 한 자발적으로 경기에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달리기 좀 못한다고 해서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도 아니니 다들 적당히 즐기고 빨리 집에 가자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조금만 열심히 하면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 운동회는 완전히 달랐다.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엄마아빠를 체육인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내 아이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고, 선물꾸러미를 가져다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운동장에 있는 모든 학부모가 모든 경기에 '진심'으로 임했다.


아빠들의 경기는 특히 더 살벌했다. 사회자가 '오늘은 안 다치는 게 이기는 겁니다'라고 몇 번씩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 신랑은 오후에 회사에 가봐야 해서 체력 아끼라고 경기에 나가지 못하게 했는데, 출전했다면 아마 출근을 취소해야 했을 것이다.


모든 경기에 성실히 참여한 덕분일까, 2시간 내내 '선물'을 부르짖으며 우는 아이를 안쓰럽게 생각한 선생님의 배려 때문일까, 시상식에서 '아깝다상'을 받아 아이에게 커다란 선물 상자를 하나 더 안겨줄 수 있었다.


집에 와서 풀어본 선물들은 키친타월, 행주, 수세미, 햄참치세트같이 소박한 것들이었지만, 회사 체육대회에서 받은 상품권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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