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우물 벗어나기
3번째 직장에서 5년을 꽉 채우고 이직에 성공했다.
남은 연차를 몰아 써서 딱 일주일을 쉬고 다음 달부터 새 직장으로 출근한다.
남들은 '점프에 성공했다'라며 부러워하고, '어쩐지 요즘 표정이 좋더라니'라며 장난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고3 수험생 때 겪었던 과민성대장증후군과 알레르기가 도질 만큼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낯설고 더 큰 조직에 가서 내 몫을 다 할 수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이직한 직장은 시장이 아예 다르다. 미지의 세계로 입성할 생각을 하니 설렘은커녕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관련 시장 경력이 전혀 없는데도 나를 뽑았다는 것은 그래도 일을 잘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일 텐데, 그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 또한 크다.
내가 이토록 자신감이 없는 인간이었던가..
이직할 직장이 중견기업이기 때문에 더욱 긴장된다.
첫 직장을 빼고는 계속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작은 조직에서 '에이스'로 자신감 넘치게 일했지만 이제 우물을 벗어나 좀 더 '큰 물'에 가려고 하니 나도 모르게 기가 죽는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이 다 비슷비슷하지 뭐!라고 스스로에게 소리쳐봐도 초조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은 기간 동안 GA4, 태블로, SQL 같은 툴을 좀 더 스터디해야 하나? 그런데 새 직장이 그 툴을 안 쓰면 어떡하지??
그럼 마케팅원론을 다시 잡아볼까? 해서 괜히 마케팅불변의 법칙, 브랜딩불변의 법칙 같은 고전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첫 번째 이직 때는 이렇게 긴장되지 않았다. 물론 그때도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중고'라는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신입사원처럼 행동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과장급이다.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부담감이 엄청나다. 심지어 첫 출근날 어떤 옷을 입어야 '프로'처럼 보일지 고민될 정도다.
최종합격 메일을 받고는 이직을 축하하는 셀프 선물로 노트북을 새로 사려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은 3개월 뒤로 미루기로 결심했다. 3개월간의 수습기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잘 적응한다면 그때 선물을 생각해도 늦지 않다.
나 잘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