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제도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의 인생에 전쟁이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을까? 유진벨재단 이사장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강사는 유사 이래 한반도에서 60년 이상 전쟁이 없었던 적이 있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우리가 사는 이 평화의 시기는 한반도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예외적으로 긴 평화시기라고 했다. 그런데도 2025년에 살고 있는 나는 늘 평화로웠던 것처럼 앞으로도 평화로울 것처럼 순진하게 살고 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전쟁의 공포 잔인성 고통을 생생하게 눈앞에 들려주면서 순진함을 깨워주었고 몇 번이고 책을 덮었다 폈다를 반복해야하는 안절부절을 겪게했다.
“엄마, 나, 알아. 엄마가 총알이 와도 왜 바닥에 안 엎드리는지. 엄마랑 내가 같이 죽어야하니까 그런거지? 네 살짜리 우리 딸아이가 나한테 한 말이야...이따금 동료 병사들이 우리를 딱하게 여기고 도와주려고 했어. 하지만 아무한테도 딸을 맡길 수가 없더라고. 갑자기 총격이 시작되면? 갑자기 우리 딸이 사라지기라도 하면...여단장 로파틴이 나를 맞이했어. 이런 상황에 아이까지 데리고 타자기를 가져오다니. 이런 일은 그 어떤 남자도 못할 거요.”(p484)
전쟁은 엄마를 자녀의 죽음 앞에 서게도 하고, 때로는 생존을 위해 아이를 포기해야하는 상황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어떤 엄마는 자녀를 등에 업고 더욱 자신답게 자신의 미션을 수행하기도 한다. 생명을 파괴하는 극단적인 전쟁상황에서 내가 어떤 영웅담 같은 모성애를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런 나의 기대감? 상상력?자체가 폭력적이고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니까,라는 현재 시점의 잣대가 아니라 그저 그 상황에서 그 선택을 해야만했겠지라는 경청과 연민이 더 필요했고, 나는 경청과 연민의 자세로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했다.
기억할 것인가 잊을 것인가
그녀들의 이토록 많은 개인 기억은 이 책을 통해 집단기억이 되었다. 집단기억은 공동체가 과거의 사건을 공유하고 해석하고 기억하면서 이 기록과 기억이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정체성 윤리 세계관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는 기억을 스스로 구성하고 자신을 속이기도 했다. 개인의 기억이 왜곡될 수 있는 것처럼 집단의 기억도 그럴 수 있기에 꾸준히 기억을 담론의 장에서 다루고, 기억을 통해 치유하고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실천해야 한다.
독일군의 후손 독일은 현재 나치 과거에 대한 기억의 책임을 제도화했다.
독일에는 홀로코스트 부정죄가 있다. 나치 범죄(유대인 학살 등)를 부정하거나 축소하면 최대 징역 5년의 처벌을 받는다. 표현의 자유보다 기억의 책임이 우선되는 법적 판단이다. 또 공교육에 나치의 범죄,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대전은 의무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고 학생들은 수용소 방문과 역사 토론을 통해 직접적으로 기억을 체험한다. 역사를 감추거나 중립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비판적 성찰을 중시한다. 독일은 이처럼 기억은 사적 감정이 아니라 공적 의무라는 인식 하에 법 교육 공간 외교에 이르기까지 반성과 책임을 제도화했다.
독일이 책임을 제도화했다고 해서 그녀들의 전쟁 기억과 트라우마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의 말해지지 못한 기억, 침묵된 고통 등은 전쟁 이후 세대에게 후기기억(post-memory)으로 전해졌을 것 같다. 그 침묵된 감정들을 흡수하면서도 언어를 갖지 못했던 전후세대의 고통이 있었고, 그 이후 세대인 우리쯤에와서야 이렇게 신학, 문학 등으로 그 고통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제 이 책을 읽은 나는 말해지지 않은 고통에 경청과 연민으로 귀 기울이고, 그 고통의 기억을 잊지 않되 생명을 위한 방식으로 연대해야하는 과제가 남았다. “용서하는 게 쉬웠을 거라고 생각해?...그들의 눈물을 보고 싶었어...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기까지 나는 수십 년이 걸렸어...”(p518) 이 문장을 읽고 어떤 기도문이 떠올랐다. 고통을 기억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기억 속에 생명으로, 과거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응답하게 하소서. 그리고 나는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전쟁의 고통이 멈추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