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_후기 1

이 여인들의 기억을 어떻게 기억할것인가

by 전문상담사 이희


전쟁에 대한 여성의 목소리

저널리스트이자 구술(oral) 역사 기록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200명이 넘는 소비에트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록했다.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서 전쟁이라는 남성 중심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의 언어로 여성의 이야기를 재정립했다는 의미가 있다.


“지난 삶을 돌아보는 사람의 마음속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욕구뿐만 아니라 풀지 못한 삶의 비밀까지 알아내고픈 욕구도 숨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본문 중)”


한 개인의 기억으로 시작했지만 집단적 기억으로 전환하면서 소리 없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쟁의 공포, 인간성, 모성, 고통 등을 담았다.

성서의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이스라엘 왕조의 이야기들, 주로 남성이 주인공인 남성관점의 이야기를 하는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이들 사이에 민들레같은 여성 이야기 룻기가 있다. 수많은 남성들의 전쟁 이야기 중에 이 책도 룻기같은 책인 것 같다.

나는 이 여인들의 기억을 어떻게 기억해야할까?

나는 ‘기억’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영화 <메멘토>를 보면서 ‘충격적’이라고 느꼈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레너드는 아내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5분만 기억하는 단기기억상실증 환자다. 그가 기억하기 위해 사진 메모 타투 등을 사용하면서 노력했지만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했고 기억은 오히려 감정에 의해 쉽게 조작될 수 있었다. 레너드는 결국 감정이 섞인 기억보다 객관적인 기록을 더 신뢰하게 됐는데 또 역설적으로 그 기록마저도 왜곡됐다. 우리가 믿는 사실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그리고 기억상실 속에서도 어떤 감정들은 지워지지 않더라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200여 명의 생존 여인들의 기록을 읽으면서 기억되는 몇몇 이야기들을 나의 기록으로 남겨본다. 마치 레너드가 기억하기 위해서 메모했던 것처럼. 그들의 이야기가 나의 기록이 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인데, 책에 표시해둔 지점들을 쭉 읽어보니 요즘 나의 이슈인 ‘모성’ ‘기억’과 관련된 것 같다.



“새벽 4시면 비행을 떠나야해서 꼭두새벽에 일어나 딸아이에게 죽을 주구, 딸애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후 비행을 떠났어. 저녁이 다 돼 캠프로 돌아오면 죽을 먹은 건지 안 먹은 건지 딸아이는 온몸이 죽으로 범벅이 돼 있곤 했어. 그리고 울기도 지쳤는지 힘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지. 제 아빠를 닮은 그 큰 눈으로...”


“1941년 말에 남편의 전사통지서가 날아왔어. 남편이 모스크바 근교에서 전사했다는 거야. 남편은 비행대 지휘관이었어. 나는 딸을 사랑했지만 남편 가족에게 데려다줬지. 그리고 전선으로 가겠다고 지원했어....떠나기 전날 밤...밤새 딸이 잠든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어...”


“나는 전쟁의 소리를 기억해. 사방에서 으르렁, 쾅쾅, 쨍쨍 불을 뿜어대던 그 소리들...전쟁터에서는 사람의 영혼마저 늙어버리지. 전쟁이 끝나고 나는 다시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그게 제일 중요한 점이지. 내 생각엔 그래...”


“아들을 낳아 길렀어. 아들만 다섯. 딸은 하늘이 주시지 않더라고. 나 스스로도 가장 놀라운 일은 그 끔찍하고 무서운 일을 겪고도 예쁜 아이들을 낳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 게다가 좋은 엄마에 좋은 할머니까지 되었다는 사실이지. 이제 와서 모든 걸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아. 어느 다른 소녀였지...”


“우리의 기억은 결코 이상적인 도구가 아니다. 기억은 제멋대로인데다 변덕스럽다. 우리는 현재로부터 과거를 바라본다. 현재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삶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겁도 없었다...만약 내가 좀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면, 이처럼 밑도 끝도 없는 깊은 나락으로 달려들 수 있었을까?”

“아픔, 그건 우리에게 하나의 예술이다”


현재 나의 숙제와 맞닿아 있는 그들의 기억과 기록들이 나에게 어떤 기억과 기록이 될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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