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옥사 8호 감방 유관순
지금 우리의 서대문독립공원은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평화의 공간이다. 이 공원 한쪽에는 이진아도서관도 있다. 책을 좋아하던 딸 이진아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 그 가족들이 출원해서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조용한 서대문독립공원을 걷고 걸으며 서대문형무소에 방문했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는 나의 두 아이와 함께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고통스럽지만 별처럼 살아갔던 이들의 역사를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은 유관순 열사의 족적이 있는 이곳이 너무 궁금하다고 했고 나도 그랬다.
서대문형무소는 대한제국 말기, 일제에 의해 1908년 10월21일 경성감옥으로 개소되었다. 개소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근대식 감옥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맞서 싸운 한국인을 저지하고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인에 대한 억업과 처벌의 장소로 이용되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 순국하였으며 광복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해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수감되어 고난을 치렀던 곳이다. 이곳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부터 1987년까지 80여년의 감옥 운영 기간 동안 식민 권련과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희생이 있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전시관 중앙사 취조실 사형장 옥사 한센병옥사 격벽장 공작사 우물 노역장 등이 있었다.
실재 이곳에 머무르셨던 분들의 사진도 있었는데, 그분들의 사진을 보니 이곳이 훨씬 현실적으로 실제적으로 느껴졌다. 정말 이곳에 그분들이 있었고 겪었다.
전시관은 서대문형무소의 다양한 스토리들을 잘 정리해놓았다. 민족저항실 서대문형무소8번방 등은 고문의 신음소리까지 설치를 해놓아서 아이들이 아주 무서워서 날뛰기까지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익숙한 이름, 유관순 열사의 여옥사8호감방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여옥사8호 감방은 1919년 3.1운동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공간이다. 1920년 8호 감방에는 유관순, 어윤희,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김향화 등이 함께 수감되었다. 이들이 1920년 3월1일 3.1운동 1주년 옥중 만세투쟁을 벌인 현장이다. 이 일로 유관순은 심한 구타와 고문으로 그해 9월28일 옥중 순국했다. 한 여성분은 옥에서 출산을 했는데 철창의 한,스러운 마음으로 아들 이름을 철한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쇄약해져서 2년만에 소천하셨다고 했다.
여옥사8호감방 이야기는 영화<항거>에서도 볼 수 있다. 아이들과 유관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차에 아이들도 이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먼저 영화를 살펴봤는데, 너무 가혹하고 잔인해서 차마 아이들에게 아직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 중에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8호방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는 부분이 있다. “혹시 3.1독립운동을 후회해본 적 없느냐. 나는 독립운동을 의무라고 생각했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현실은 모르고 이상만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이 참 와닿았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그러나 이 고통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진짜 그 사람의 삶이 된다는 것, 유관순은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덜어주시진 않겠지만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실거야”(영화 항거 중)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저항한다는 것, 지킨다는 것의 의미와 함께 이 영화를 함께 보리라 생각했다.
코로나 시기에 아이들과 랜선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방문했던 적이 있다. 이곳저곳 검색하다가 반갑게 발견한 어플.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어플을 다운로드해서 형무소 곳곳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볼 수도 있다. 서대문형무소에서의 고초와 고통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휴대폰으로 까딱까딱하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다. 쇼파에 걸쳐 앉아서.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내 아이들과 나는 이렇게 편하게라도 그 이야기들을 듣고 전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랜선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방문과 실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방문의 장단점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랜선방문은 구체적인 정보나 지식을 더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반면 실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방문은 전시관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 실감있게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
서대문독립민주축제도 매년 열린다고 한다. 매년 광복절에 시민과 광복의 기쁨을 나누고 독립과 민주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미래세대와 공유하는 시민역사문화축제다.
“너무 무서워 다신 오고 싶지 않아. 그냥 나는 내 하루를 잘 살게”
나는 이곳에 두 자녀와 함께 방문했다. 큰 아이는 좀 더 커서 의미를 아는 것인지 역사관을 돌 때마다 무서워했고 고통스러워했다. 상상하기만해도 무서운 이곳에서 그 고통을 감내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해볼 수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알고 있는 이름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통해 수없이 많은 열사들의 투쟁과 삶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유관순 누나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없이 많은 이름과, 이름없이 순국하신 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역사관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꽃같은 딸과 아들을 대한독립을 위해 내어놓으신 부모님들과 가족도 먼저 독립운동가이시다. 나의 귀한 딸과 아들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큰아이는 너무 고통스러웠던 서대문형무소역사관 현장에 당분간은 다시 가고싶지 않다고 했다. 그저 자신의 어제 오늘 일상을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한다. 나도 빚을 진 마음과 평범한 일상의 감사로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