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인 Z Dec 26. 2020

영화 말고 주식

주린이 일기

지금의 30대들은 주변에서 주식으로 망했다는 사람들에 관한 소식을 많이 듣고 자랐을 것이다. 

빚보증으로 인해 친구와 가족관계에 모두 악영향을 끼친 사람들의 이야기도 단골 메뉴였다. 

게다가 IMF를 사춘기에 겪였기 때문에 돈에 관해서 매우 보수적이다. 

잘 나가던 아버지 사업이 망하는 걸 겪었고, 

굴지의 대기업이 줄줄이 없어지는 것도 보았다. 

더불어 '이해찬 세대'라는 교육과정을 몸소 겪으면서 대입에도 실패했다.

급변하는 정책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보았기에, 안전지향형으로 자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동학개미', '서학개미', '로빈후더' 라는 말은 들었지만 주식은 나랑 먼 이야기로 생각했다. 

영화일은 언제 백수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여유자금이라는 게 있을 수 없기도 했다. 

적금조차 정기적으로 넣는 게 어려워 목돈이 생기면 100만 원씩 분할해서 미래의 백수인 나에게 

매달 월급처럼 만기가 돌아오게 세팅해 넣어두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가장 큰 리스크는 생계가 곤란해서 영화일을 관두는 거였기에,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재테크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입봉(감독 데뷔)을 하기까지 수입 없이 버텨내야 하는 기간이 최소 3년이 걸렸다. 

물론 운이 좋아 입봉 하면 다행이지만 많은 경우 다시 조감독을 하거나 다른 일을 찾아 떠났다. 

어쨌든 미혼인 나는 배우자의 도움도, 부모님께 손을 벌릴 염치 또한 없었기에 그 기간을 버틸 돈을 모아둬야 했다. 대단한 자린고비는 아니었지만 술 담배를 즐기지 않았기에 10년을 일하면서 3년 정도는 놀아도 될 돈이 모였다. 


그러다 코로나 19를 맞이하였다. 

오랜만에 모였던 연출부 모임에서 90년대생인 친구가 주식을 샀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식은 돈 많은 어른들(?)이나 하는 건 줄 알았고, 그의 선택이 허황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보다 더 어렸던 친구들은 영화 말고 다른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많은 현장에서 연출부 막내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막내 이후에 거치게 되는 미술 파트 담당 연출부는 더 구하기 어려워졌다. 

내가 영화를 하면서 거쳐왔던 힘든 일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요즘 친구들은 참 인내심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로운 세대의 유입 없이 예전 같으면 벌써 입봉을 했거나 기사가 되었을 친구들이 여전히 조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입봉을 하고도 다음 작품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언젠가 올 해 뜰 날을 고대하며 기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 받들고 있었다. 

인력풀은 점점 좁아져갔고, 입봉 하지 못한 조감독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관두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일반 직장에서도 승진하지 못하는 만년 부장의 고뇌들이 흘러나오고 있으니, 

영화계 또한 조직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과정인 것 같다. 

할리우드처럼 계별 포지션이 하나의 직업이 되어, 

30년 차 포커스 풀러, 20년 차 전문 조감독, 40년 차 스크립터 같은 직군들이 

능력을 인정받으며 일하는 환경이 존재하면 좋겠지만,  

한국 영화계는 그 업무의 역량과 경력에 맞는 임금을 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여전히 파트별로 임금을 막내부터 최저임금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정해두고 시작 하기 때문에 

그런 미래는 요원해 보인다. 


10년간 상업영화를 하면서 상업적인 영화를 예술적 영혼이 없다며 대차게 까댔다. 

독립영화의 감독은 예술의 옷을 입고, 자신의 커리어를 상업 영화를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삼았다.  

이토록 돈과 예술에 대해서 솔직하지 못하고 자기 분열적인 환경에서 

생계 때문에 영화를 한다는 말이 어딘지 천박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걸 인정하고 내가 노동자였음을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사람의 노동자로서 이 시스템을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야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시 주린이의 일기로 돌아와 보면, 

시나리오를 쓰며 버티겠다고 모아놓았던 돈을 몽땅 털어 주식을 샀다. 

일단 질러놓고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주식이 수익률이 훨씬 좋다. 


입봉에 투자하면 적게는 3년의 기간이 소요되고, 

내 모든 돈을 투자하고 받는 입봉 감독 보수가 업계 평균 5천에서 1억 정도이다. 

금액만 보면 많아 보이지만 입봉을 하고 한 작품을 위해 소요되는 기간이 최소 2-3년이니 

많게 봐도 연봉 3000만 원이 안 된다. 

이건 입봉에 성공했을 때고, 아니면 정말 말 그대로 없어지는 돈이다. 

그동안 도박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사행성이 기반이 되는 복권도 사지 않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걸고 가장 큰 도박을 하고 있었다. 

아무런 리스크 분산도 하지 않은 채 내 시간과 돈을 몽땅 한 바구니에 담았던 것이다. 


지난 10년 간 영화 산업 전체의 수익률을 따지면 계속 하향 산업이었다.  

주식 시장은 2008년 금융 위기가 왔지만 그때 이후로 꾸준히 상승 그래프이다. 

성향상 타이밍을 보며 매번 주식 그래프를 들여다보는 게 괴로워기에 

없어진 돈이라고 생각하고 묻어 두기로 했다. 


주식 투자 붐에 한몫을 한 '존 리'의 책을 보았다. 

"자본금이 모자라서 창업을 할 때 동업을 많이 하는데, 그것만큼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 경우도 없다. 

주식을 사는 건 가장 편하게 그 회사와 동업을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나는 내가 애쓰지 않았는데, 주식을 삼으로써 '테슬라'와 동업자가 되었다. 

'일론 머스크'는 내 존재조차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실패하더라도 진심으로 우주 개척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SF영화를 보며 키웠던 어릴 적 그 꿈에 투자했기에 수익률이 바닥을 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예전처럼 내 모든 꿈을 한 곳에 투자한 건 아니다. 

평소에 관심 있던 많은 회사 주식을 골고루 담았다. 

자고로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게 아니라는 말을 철저히 따랐다. 


나는 이 원리를 주식뿐만 아니라, 내 삶에서 내가 기대하는 모든 곳에 적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의 꿈에 올인하지 않기로 했고, 하나의 사상에 몰두하지 않기로 했다. 

한 사람에게 모든 기대를 걸지 않기로 했으며, 수입원 또한 다양화하기로 했다. 


하나가 망해도 뭐 어때 다른 게 있잖아?라는 마음이면 

한 곳에서 부당함을 겪어도 생계가 위협되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나답게 하지 못하게 하는 위험 조차 분산하기로 했다. 


하나의 길 밖에 보이지 않았던 곳에서 벗어났더니, 

더 이상 그 선로에서 이탈할 까 봐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개척하는 길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한 발을 내딛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경험으로 채워나가 보기로 한다.


돌아갈 여유 자금마저 털어버리고 내 삶의 방향을 바꾸려고 부단히 애쓰는 중이다. 

두렵지만 매일매일 달라지는 생각들로 인해서 앞으로가 기대가 된다. 


이제 정말 생계를 위해서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하나는 브런치 작가 등록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식을 사 본 것이었다. 

평소에 사진 찍기를 즐겨하니 곧 스톡 사진 또한 판매를 해 볼 예정이다. 

탈도시를 위해 땅을 알아보았고, 

기후 변화에 맞서 ‘제로에너지 건축물’에 대해서도 공부 중이다. 

만들어진 길이 안락해 보일지 모르지만, 10년을 버텨온 길이 결코 비단길이 아님을 알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같은 길을 갈 이유가 없다. 

그러니 고민은 짧게 하고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뭐해 먹고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