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혐오와 편견을 반대한다.
69세 - 임선애, 2019
최근 몇 년 전부터 눈에 띄는 배우분이 있었는데, 예수정 선배님이었다.
<신과 함께 -죄와 벌>에 자홍모로 나오면서 이름을 확실히 기억하게 되었고,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보면서 완전히 반했다.
당시에 드라마를 놓고 역차별이니 미러링이니 라는 말들이 많았지만,
내 수준에서는 드라마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었다.
가부장제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진진했고,
그 권력의 정점에 있는 그룹 회장님을 맡은 예수정 선배님 때문에 더 즐겁게 보았다.
“야 가경아, 넌 왜 자아가 있니?” “이 집의 개가 될래, 개같이 망해볼래?”
라는 대사가 있다. 이 말을 너무 찰지게 해서 팬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주인공인 영화가 나왔다 제목은 <69세>
와... 이젠 누구의 엄마, 할머니 말고는 할 수 있는 배역이 없을 것 같은데,
그 모든 편견의 최전방에서 맞서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다.
영화가 남성 혐오적인 라는 이슈로 남성 관객들을 다 걷어차 버렸지만,
정작 영화는 모두가 불행한 가부장사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에서 살아 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제적 생산성을 잃은 나이든 남성은 노인혐오를 겪는다.
생산성이 없어진 여성은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살림을 해야 한다는 가부장제의 메시지는 젊은 남성 또한 불행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69세의 여성을 결혼을 앞둔 젊은 남성 간호조무사가 성폭행한 사건에 관한 영화이다.
더구나 실화다.
자신의 경제적 무능함으로 처가에게 굽신거리면서 지내던 남성은 불행해졌고,
자신의 남성성이 거세되었다는 잘못된 착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 사태를 바로 잡아야 했지만 방법을 몰랐고,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에게 풀면서 가해자가 되었다.
피해자의 나이를 떠나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게 문제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우리 사회는 그 정도의 성숙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영화는 8월에 관람을 하였고, 같이 일해 던 배우와 함께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보았다.
사실 그땐 코로나 때문에 극장에 가기가 꺼려졌었지만,
용기 내서 같이 영화를 보자고 말한 그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당시에 정책이 확립이 안 되어, 극장마다 자석 판매 시스템이 달랐다.
극장을 갈 때마다 옆 자석을 건너 띄고 앉아도 바로 앞에 사람을 앉히면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더구나 음료나 팝콘을 먹는다고 마스크도 벗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욱 불안했다.
그래도 광화문 씨네큐브는 극장 내 음식물 섭취는 금지니까 라고 위안을 삼고 극장에 갔다.
극장은 매우 한산했고, 내 우려와 달리 좌석은 지그재그로 배치를 해주어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관객들은 우리 둘 빼고는 중년 여성들 뿐이었는데.. 마음 한편이 짠 했다.
이런 '페미니즘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정작 소비층부터 나눠져 버린 것 같아 남녀평등의 길은 멀어 보였다.
완성도나 아무런 철학 조차 없는 영화가 여성들이 주인공이라고 보지도 않고 영혼을 태우며
논란이 되는 상황도 안타깝고,
반대로 덮어놓고 여성영화라고 보지 않는 문화가 형성되는 것도 슬프다.
이 영화는 객관적으로 평하자면 만듦새가 썩 좋지는 않다.
서사가 뚝뚝 끊기고 중요한 정보들이 제대로 다뤄지고 있지 않다.
의도라고 보기엔 편집이나 연출면에서 미숙하다고 느껴지는 게 더 커 보인다.
소재의 민감성 때문에 너무 조심스러운 접근이 영화적 재미를 반감시킨 것 같다.
페미니즘 영화는 이제 시작점에 와 있고, 다른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직은 억울함을 내놓는 수준이라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게 많은 이들의 반감을 사고 있겠지만, 그 정도 수준의 용기를 내는데도 오랜 세월이 걸렸다.
요즘 많은 여성 감독과 작가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논의되는 과정들이 무척 반갑다.
다만, 유독 여성 서사에 관해서만 도덕 기준이 높고 완벽 지향적인 게 안타까울 뿐이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용기 있게 이런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과 예수정 선배님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