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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Jan 05. 2021

'쎈언니'의 등장이 마냥 반갑진 않다

프레임을 벗어나는 삶

인격이 파괴된 감독들의 영화가 높은 확률로 흥행을 했다. 


"그래, 성공하려면 저래야 돼" 

"성질이 더러운 감독보다, 능력 없는 감독이 더 최악이야" 


서로들 모여 앞다투어 승자의 허물을 덮어준다. 

그 영화가 흥행할수록 거기서 못 버티고 나온 이들의 패배감은 짙어진다. 


"내 인내심이 이 정도인가?"

"내가 보는 눈이 없는 건가?"

"나는 어디서도 밥벌이를 못하는 걸까?"


한때는 성공하려면 그래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도 했고,

대외적으로 까칠한 내 모습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지지 않으려 성질을 힘껏 내고 돌아온 내게 

감독이 되어도 잘할 거라는 말을 칭찬으로 들은 적도 있다.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하고 합리적으로 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나서기 싫어하는 이들의 방패막이되었을 뿐이었다. 

수차례 찔렸지만 강한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다.

내가 한 발언을 지켜 내려 갖은 애를 썼다. 

상대의 반응을 이해해도 찔리면 여전히 아프다. 


내게 남는 건 내 마음의 커져가는 빈 공간뿐이었다. 

나를 너무 괴롭히면서 시간을 보냈고, 

이젠 자아분열을 그만두고 싶다. 

나는 내 꿈을 편친 것도, 

내 길을 가고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도제 시스템은 없어졌지만, 

대기업의 자본이 들어온 영화계를 

아무도 직장생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은 예술가인데 노동자라는 프레임을 씌울 순 없었다. 

그 속에서 서로가 다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그 어떤 고민 조차 제대로 못하고 삐걱거리며 굴러다니고 있었다. 

어쨌든 굴러는 가고 있으니, 

그 속에서 누가 상처를 받든 죽어나가든 반성 없이 그냥 굴리는 데에만 전력을 다한다. 


예능의 세계는 트렌드에 민감하다 보니 영화계보다 사정이 나아 보이지만 

지켜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쎈언니'들의 등장이 반갑기도 하면서 그동안 수없이 견디고 견뎌내 온 그들에게 

'쎈' 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여 기꺼이 잔다르크가 되어 순교당하길 바라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 


나는 자주 그들이 그곳에 버티고 서 있는 것만으로 감격하고 

웃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자리를 지켜내었는지 알 순 없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공감한다. 

나는 그들이 건강하게 자신이 보이고 싶은 모습으로 온전히 사랑받고 

때때로 인간적인 실수도 하면서 오래오래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 


이 또한 등 떠미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


나는 영혼이 갈가리 찢겨 광기에 휩싸여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그 예민함 속에서 건져 올린 마스터 피스 따윈 만들고 싶지 않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서로 영감을 나누며

정신적인 교류를 나누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싶다. 


그 결과가 가난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겠다. 


이런 나를 이상주의자라 부르는 친구가 있지만

그 또한 인정한다. 


그런 마음으론 영화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니 

난 감독은 못할 것 같다.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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