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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Dec 21. 2020

잔다르크가 되진 말자.

자기만의 감옥에서 탈출하기

영화를 관두고 글을 쓰겠다는 말에 주변 지인들은 의외로 적극적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그런 반응에 나도 고무적이었고, 이대로 관두기엔 억울해졌다. 

내면의 보상심리와 인정 욕구가 만나면서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순간적으로 이걸 정리해서 써내면 영화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장 '시일야방성대곡'이라도 써낼 기세로 도취되어 의견들을 나누었다. 

그 와중에 묵묵히 있던 남자 친구가 말했다. 


"난 네가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를 가장 상처 주는 곳에서 벗어나 자립하겠다는 시점에 왜 저렇게 말하는 걸까? 


그의 말에 대한 진지한 고민 대신에 열정에 찬물을 끼 얻는다며 발끈했다. 

매번 나는 단정적이고, 급했고,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더 이상 글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게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보았다. 그간 모른 척 해왔던 것의 기원은 비단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안다고 말하면 경쟁에서 낙오될 것 같아 무시해왔다. 세상 모두들 위한 개념이었지만 나 조차도 제대로 알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많은 모순 속에서 내적 갈등을 겪으며 고통받았다. 

나는 섣부르게 반 쪽짜리 시선으로 영화계 전체를 진단하려 했던 오류를 접고 내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분명히 시작할 때도 이건 나의 과오에 대한 고백이자 반성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또 주변의 기대에 내부 고발자라는 타이틀을 업고 나서고 싶어 졌다. 

그 명분이 날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인정 욕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내 모습에 혐오감마저 들었고, 

나란 인간은 어디까지 망가져있는 것일까?라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과시욕에 빠진 나는 시스템을 박차고 나오지 못하는 그들보다 내가 더 낫다는 걸 전제하고 있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있던 남자 친구는 그 부분을 느꼈을 것이다. 

내 반성문을 쓰면서도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았다. 

이런 태도라면 비난은 화살이 되어 나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 것이고, 

나는 더욱 큰 목소리를 내며 강한 척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을 게 자명했다.  

어쩌면 그런 목소리 뒤에 숨어 나의 약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자기 보호 욕구'가 발휘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정말 인정해야 한다. 나는 한 없이 약하고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 속에서 나를 괴롭혔던 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남의 허물을 파고들고 드러내기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자. '잔다르크'가 되어 허울뿐인 명예에 나를 던지지 말자. 


한 인간이 쌓아 올린 틀을 깨기란 너무 힘들다. 그게 얼마나 견고한지 모르겠지만 자존심이란 창으로, 때론 자존감이란 방패로 자신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완벽주의에 빠진 나는 아마 그 끝판왕일 것이다. 실체도 없는 이미지 때문에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는 오늘 그 감옥의 한 귀퉁이를 파내었다. 

조금씩 나를 규정했던 타인의 시선들을 파내어 <쇼생크 탈출>의 기쁨을 누릴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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