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들려요.
일하는 동안에 명절이나 빨간 날에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세트 촬영이 아닌 이상 촬영 장소 여건상
남들이 쉬거나 자는 동안이 촬영하기에 최적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부분의 관공서는 명절 기간이 촬영 대목이다.
남들이 쉴 때 일하고, 일할 때 쉬는 생활이 괜찮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여행지의 인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그렇게 남들과 다른 휴일을 보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비혼의 나를 향한 어른들의 잔소리도 듣기 싫고,
그나마 며칠을 푹 쉴 수 있어서 명절도 챙기지 않았다.
온갖 이유를 들어서 명절에 고향을 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에 갔더니 레퍼토리가 변해있었다.
"그래서, 언제 입봉 해 ㅇ감독?"
아니 왜 이렇게 사생활 침해하는 질문들을 스스럼없게 물어 들 보는지...
"언제 승진하세요?"
"퇴직은 몇 년 남으셨어요?"
"노후 준비는 잘 되시고요?"
내가 그들에게 이런 거 물어보면 정말 기분 나쁘지 않을까?
내 입장에선 '결혼 언제 할래?' 소리보다 '언제 입봉 해?'가 더 무서웠다.
그동안 나의 부재를 설명해왔을 부모님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언제 입봉 해?' 질문에 뒤이어 본인들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꽤 자주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천만 관객이 들 거라며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한다.
그러고는 뒤에 꼭 덧붙인다.
"나는 지나가는 액스트라 시켜줘"
"그,, 행인 1,2 뭐 이런 거 있잖아"
"아..... 네.. ;;;;"
모두의 삶은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삶이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대부분의 실화 배경 이야기들이 그걸 가공하면서 왜곡되고, 상처 받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영화라는 건 어쨌든 감독의 주관과 입장을 정해야 그 주제가 명확해지는데
그게 본인들의 의도와 달라지면 어쩔 건가?
그들의 이야기가 감사하면서도,
영화감독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과 권위,
거기에서 따라오는 은근한 기대감이 부담스럽다.
아니, 그리고 나는 정작 감독이 된 적이 없다.
물론 성실히 글 쓰고, 밥 굻어가며 버티면 언젠가는 입봉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버티다가 적은 초봉으로 입봉을 하면 "언제 입봉 해?" 소리는 안 들을 수 있겠지.
이러면 모두들 다 아는 순서대로 다음 질문이 따라온다 "차기작은 언제쯤?"
아.. 진짜 피 말리는 인생이다.
왜 다들 이렇게 본인 스스로도 결정할 수 없는 문제로 달달 볶지 못해 안달인가?
이게 그냥 고민 없이 건네는 소리임을 알지만 들을 때는 스트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