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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Jan 19. 2021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리더 55인

결국 극장이라고요?



이 설문에 동원된 리더 55인의 목록을 보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씨네 21의 기사를 보고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글을 쓴다.


산업 리더 55인이 내놓은 과제 1위가 '극장의 회복'이다.

(구제 및 부양책, 극장 관람 독려 인센티브 제도, 직접 지원, 경쟁력 강화 etc)


이건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지나지 않고,

더구나 그 독이 영화계 산업 전반을 포용하고 있지도 않다.


마치 부동산 부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집값이 떨어졌으니,

직접 적인 세금 지원과 구입 독려 인센티브 제도를 줘서

다시 집값을 올리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단 자신들의 배를 불린 뒤에

리스크 분산을 도모하자는 건데

세상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승자독식의 멀티플렉스 시대 영화에 종말을 고한다.


뉴미디어 시대에서 고여도 한참 전에 고여서 이미 섞은 물이라 곧 망할 것 같다.


한때는 사람들이 영화계의 좌편향을 우려했지만,

내가 겪은 영화계는 소위 강남좌파, 입진보들의 세계였고

이미 기득권을 차지한 그들은 새로 유입된 세대들에 대한 고민과 산업의 변화에 대처보다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걸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오히려 가치 판단에 따른 자아분열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이중의 정신적인 고통까지 받았다.

분명 더 나은 세상과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영화를 만들지만,

그걸 같이 만드는 스텝들의 인권은 고려하지 않았다.


영진위에서 작년 한 해 영화인들을 위한 부양책으로 3인 이상 모여서 지원을 하면

단편을 찍을 수 있는 제작비를 지원해주었다.

그때 한 감독을 만났다.

나는 이미 영화계에 대해 지쳐있었고,

영화 산업 구조에 대한 오랜 고민을 털어놓았다.

돌아온 그의 대답에

절망했다.

내가 아직도 그들에게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치욕스러웠다.


"내 세대가 영화를 감독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였던 것 같아. 난 운이 좋았지. 호호호"


이미 올라왔는데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뭔가?

좌우에 관한 비판 조차 사라진 채

위로 향하려는 관성만 남은 인간들이 모인 곳에서 상생이라는 개념이 없다.

상하 관계에서 신음하는 개인들만 남을 뿐이다.

리더 55인이 말하는 과제는 산업 전체가 아닌 그냥 그들의 고민일 뿐이다.

그러니 과제 1위가 부양책이지..


영화는 가지고 있는 파급력으로 인해

원래의 가치보다 높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영화도 상품이다.

우파 고객님의 니즈에 맞춘 우파 영화와

좌파 고객님의 니즈에 맞는 좌파 영화라는 상품이 있을 뿐이다.

각자의 입장에서의 감성팔이만 있을 뿐이다.

여성영화가 뜨는 것 같으니

기존 문법에 성별만 바꾼 영화가 나오는 것이다.


더 최악인 건 기존의 다른 사업들은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젠더, 환경, 다양성, 플랫폼에 따른 콘텐츠'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동반해서 몸집을 바꿔가는데

산업 전망이라고 내어놓은 게 기존 극장 시스템의 회복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고민할 시간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이제 진지하게 고민하자고 모여서 나온 상황을 묘사한 문장이 이렇다.


"영화 스탭이 대거 드라마로 이동하는 현상 등 각 분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이슈들이 일말의 피로감과 함께 팽팽하게 분산되는 모양새였다"


영화 스탭이 왜 드라마로 대거 이동하는지 몰라서 하는 말인가?

그걸 막고 싶으면 더 나은 근무 환경을 마련하던가, 처우를 개선하는 게 우선 아닌가?


같이 만드는 삶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PD의 말에

서로 버티라고 말하며 다독이는 우리네들의 관계가 슬펐고,

브런치에 쓰는 거 말고는 말할 곳이 없는 게 더 화가 난다.


" 저, 영화 관두겠습니다."


내가 말한다고 바뀔 리도 없지만

나 혼자 영화에 대해 남은 애정을 끌어모아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세월의 흐름에 직격탄을 맞고 잘 쓰지 않는 때에

10년을 영화계에서 버텼으니 정말 미련했다.

비판이 사라지고,

더 많은 애정을 지닌 사람들은 떠났다.

비슷한 사람들만 남아서 조직의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종말을 맞는다.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관계가 우선이 되면서 내가 속한 사회를 돌아보지 못했다.

그건 나를 부정하는 과정인 동시에 내 동료의 정체성도 흔드는 행위기에 조심스러웠다.

늘 주저했고, 술자리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입이라도 털었다고 안도했다.

이건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나의 생존에 관한 고뇌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때론 존재가 거슬린다는 말을 했고,

네가 입봉 하며 바꾸라는 말들로 묵살당했다.

내가 코스대로 밟아가려 했던 길이 안전한 길처럼 보였지만

사실 단 한 번도 이 길이 안전하거나 나를 위한 길인 적이 없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남이 정해준 길이 싫다고 영화계에 들어왔으면서

정작 그 안에서 또 관성처럼 그 길을 따라왔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님을 절절히 깨달았으니 이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오자.


한 세기의 역사 동안 영화는 그 어떤 포맷에 구속되지 않았다.

산업의 발달에 따라 모습을 끝없이 달리 해왔다.


최초의 영화는 매거진의 하나의 길이에 맞게 15분 내외였고,

사운드의 발전으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가 되었다.

칼라필름이 나오자 흑백영화에서 컬러로 바뀌었다.

TV의 보급으로 차별화를 위해서 4:3의 포맷에서 2.35:1로 변신을 도모했으며,

디지털의 발달로 영화 = 필름으로 불리던 시대도 지나고 있다.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차별점을 찾으며 스크린 X, 3D, 아이맥스로 포맷을 달리했다.

극장을 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스마트폰 스크린으로 보는 건 영화가 아니라고 언제까지 외면할 텐가?

이야기만 있다면 인스타그램에 맞춘 정방형의 영화도 나오고,

세로 비율의 영화도 나오고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이제는 유튜브로도 수익성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OTT 플랫폼들이 나오고 있는데 대안이라고 내어 놓은 게

기존 시스템의 회복이라면 아무 고민을 안 한 거라고 말하고싶다.


좀 더 이해력을 끌어모아보면,
2019년에 마틴 스콜세지는 마블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면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는 그런 시대를 거쳐왔고 그가 살아온 세계에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빠르게 변해가는 산업은 새로운 적응을 요구하기 때문에 불편할 것이다.

잘 모르는 건 피하고 싶은 건 어쩌면 생존 본능이다.

나는 여전히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현상을 위해 충무로까지 가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문화가 계속되어 충무로에 있는 현상소마저 없어질까 봐 두려움에 떨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Book 이 도래했지만 여전히 종이책이 팔리고 있듯이

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건 자신의 취향의 문제이지

CG로 도배된 영화를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너무 편협한 자신의 시각을 그대로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고도

왜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존재 자체를 부정 하는 것인가?

그의 영화를 보고 자랐고, 아직도 '대부'는 정말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발언까지 동의해 줄 수 없다.

새로운 시도를 하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노력을 걷어차버리는 행동은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근데 그걸 한국 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55인이 똑같이 하고 있으면 너무 안일한 거 아닌가?

영화를 왜 아직도 스크린에서만 소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보수적이라는 출판계도 전자출판, 독립출판이 활발해졌고,

독립서점들이 새로운 취향의 공동체를 만들며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영화는 독립영화, 단편 영화들이 존재했지만 이건 하나의 형식으로 보기보다는

상업영화에 들어가기 위한 발판의 인식이 강하다.

그들도 어엿한 감독이지만 여전히 '미생'으로 본다.

그러니 아직도 입봉 하려는 감독들에게 장편 시나리오를 요구하거나

단편부터 찍으라고 권유를 한다.


그럼 독립서점처럼 독립극장 활성화를 말하는가? 아니다.

나는 이미 기형적인 부동산 거품 때문에 사라진 예술영화관을 다시 짓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독립서점들이 정기적으로 영화감상 모임도 겸하고

복합 문화공간을 자처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길게 보면

새로운 부동산 기반 플랫폼이 갖추어지고 있다.

그리고 유튜브에 바로 올리는 영화를 영화가 아니라고 할 건 뭔가?

마틴 스콜세지 때문에?


그래도 영화는 큰 스크린에서 봐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동의한다. 그런 영화들이 있다.

그러니 좋은 영화들이 재개봉을 해도 다시 돈을 버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크라우드 펀딩처럼 함께 보고 싶은 좌석을 공동구매해서

큰 스크린을 빌릴 수도 있다.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고 시간에 맞춰서 상영하는 것 보다

이게 부동산 활용 측면에서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지금 양산되고 있는 한국 영화들이 전부

큰 스크린에서 틀만큼 좋은 퀄리티로 찍지도 않지 않은가?


백번 양보해서 다른 대안을 제시해보면

꽤 많은 개인들이 집에 프로젝트를 갖추었고 홈시어터를 만들고 있다.

집도 공유하고 차도 공유하는데

집에 있는 스크린을 공유 못할 건 뭔가?

극장이라는 틀을 벗어나면 수익화의 길은 오히려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 기술이라도 적용하면

저작권과 수익 회수에 더 유리한 상황이 올 것이다.


나부터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고,

위로 향하려는 욕구를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앞으로의 글들은 나를 설득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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