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인 Z Jan 27. 2021

영화계 평균

극단적 외모지상주의 세계

캐스팅 회의 때 이야기를 복기해보면 

그 누구를 데려와도 안전지대는 없다. 

곧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일 할 사람이라는 의식조차 없이

철저하게 부위별로 해체해서 상품성을 따진다. 


"저 영화계 평균 이상인데요?" 


내가 아무리 꾸며도 

배우들과의 비교에는 이길 수가 없고

애초에 그 기준에 맞추고 싶지도 않았다. 

습관성 외모 평가질에 익숙하니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그 평가질이 쉽게 옮겨간다. 


그래도 비비크림은 발랐는데 

아무도 나의 이런 노력은 몰라봐줬다.


그들이 수긍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저 말 한마디면 외모 평가질이 종료되었다. 

어떤 이들은 집요하게 배우도 포함하냐고 묻는다.

그럼 맘 속으로 너도 포함해서 내가 많이 유리하다고 말하고 

당연하다고 웃는다.


난 의식적으로 화장을 하지 않았고, 

치마를 입지 않았으며, 

액세서리를 사지 않았다. 

더 거칠게 털털한 척을 하며 

여자는 연출부로 뽑지 않겠다는 이들의 미움을 받을까 

나의 여성성을 최대한 배재하며 보냈다. 

그럼 그들은 자신의 파트 일을 놔두고 

한껏 치장을 하고 나온 다른 스텝들의 뒤치다꺼리를 도와주러 간다. 

모여서 그들의 여우짓을 논하지만

다음날이면 잊고 불나방처럼 주변으로 몰려간다. 


외모로 평가되는 시대에 살면서 거기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맘을 먹었지만 

내심 속으로 내가 더 예뻤다면 이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도 가끔 한다. 

물론 빠듯한 연출부 월급으로 사치를 부릴 수도 없었고, 

영화 현장은 매일 아침 나를 가꾸며 나오기엔 스케줄이 너무 살인적이었다. 


20Kg가 넘는 모니터를 혼자 들며 힘든 티를 내지 않았고 

꾸역꾸역 맡은 일을 해냈지만 

내게 남은 건 철마다 시린 손목뿐이었다. 

그 속에서 내가 얻은 건 무엇일까?

나는 여성 혐오에 맞선 것일까?

아님 도움 따윈 청하지 못하는 아집에 가득 찬 인간이었던 걸까?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나의 이런 모습들은 또 다른 편견에 일조를 해왔다. 

나처럼 행동하지 않는 이들의 행동을 여우짓으로 만들었다. 

스스로도 꾸밈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일에 지장을 주면

더 큰 색안경으로 그들의 업무를 평가했다. 


꾸며도 예쁘지 않을 테니 

그냥 꾸미지 않게다 라고 생각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 문제가 너무 신경이 쓰였고

외모 평가의 그늘에서 늘 사투 해온 것이다. 


처음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런 나를 방어하기 위해 타인의 권위를 빌려왔다. 

미니멀리스트, 제로 웨이스트, 친환경주의라는 각종 이념들로 

나를 방어하며

나의 꾸밈노동거부를 과대포장했다.


그래도 어설프게 남들과 비교하던 시절보다 

지금의 소비패턴이 더 마음에 드니 

나름의 성과가 있는 셈이라고 쳐야 하나?

이전 09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리더 55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