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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Jan 06. 2021

어떻게 귀촌을 꿈꾸게 되었는가?

탈도시 일기

사실 나는 뼛속까지(?) 도시 여자였고, 

이제 7년째 만남을 이어가는 남자 친구는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우리의 무기한 장기 연애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성공 지향적이었고, 타협이라곤 1도 모르는 나의 독선이 우리의 관계를 방해해왔다. 

종로구 사대문 안에 살면서 막상 잘 즐기지도 않는 궁세권의 부심을 부리며 

정세균을 뽑았고,  이낙연과 황교안을 두고 선택할 수 있는 투표용지를 받아 들고 희열을 느꼈다. 

정치 1번지 종로구의 주민으로 계속 살고 싶었다.


주변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우리도 같이 살 집을 알아보았다. 

인생의 한 번인 로또와도 같다는 18평에 5억이 넘는 아파트 청약을 알아보았다. 

부동산의 세계는 냉정했고, 계약금과 잔금에 들어가는 2억 가량의 돈이 우리에겐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을 해도 결국은 갚아야 하는 돈이다.

애초에 남자 친구와 나는 4대 보험이 적용이 되는 직장인이 아니니 그 만한 대출금이 나올지도 미지수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청약이 당첨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생각해보아도 

5억이라는 돈을 갚으려니 막막했다. 

부동산 고수인 내 친구는 5천만 원의 투자금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시각으로 바라보았지만 

애초에 삶의 기본 조건인 주거가 투자가 된다는 개념이 와 닿지 않았다. 

그 과정에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는 건 너무 마음이 불편하다. 


게다가 실거주를 한다고 가정하고 대충 계산해도 20년간 매달 200만 원을 꼬박꼬박 갚아야 

그 집이 온전한 내 집이 된다. 

습관적 백수생활을 감당해야 하는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영화 업계의 특성상 10년간 나의 근로 실적은 

평균적으로 1년에 6개월 정도 일하고, 

나머지 6개월은 그때 번 돈으로 연명(?)하는 삶을 살았다. 

그간 월세도 밀리지 않고 냈고, 

틈틈이 해외여행도 다녀왔고, 

빈번한 백수생활로 놀기에는 달인이 되어 있지만, 

나름 통장의 잔고도 있다.

용케도 불안정한 생활을 잘 꾸려 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초반 5년 간의 생활비는 부모님 카드를 썼고, 

동생에게 가끔씩 용돈을 받았다. 


앞으로 10년도 이렇게 주~욱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민폐를 끼치면서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부터가 

자기 객관화가 1도 안 된 꿈의 세계를 벗어날 의지가 없었던 거다. 


그런 내게 주어진 현실은 

"이제 입봉 하셔야죠?"였다.


아.. 결혼하라는 소리보다 더 지겹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참인 어느 날 친한 감독이 말했다. 


"언니, 저 5년 뒤에 20억 벌어서 집 지을 테니까 같이 살아요" 

"어디?" 

"양평이요" 

"양평?!" 


그는 감독으론 흥행에 실패(?) 했지만, 작가로서는 고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그 조차도 높아지는 몸값으로 더 이상 업계에서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

그와 같은 전문작가에게 각색을 맡기면 일정 기한 내에 지불해야 하는 돈이 정해지지만

입봉을 준비하는 감독이 스스로 각색을 하면 계약금을 받고

투자를 받기까지 사실은 무기한으로 각색을 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20억을 모아 집을 짓는 건 너무 멀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코로나로 인해 집 안에 갇힌 신세가 된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 뭘 좋아하는지..


집 한번 짓자고 생각했더니 

삶에 대한 모든 태도와 철학에 대한 질문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환경에 무해한 인간, 미니멀을 추구하며 소박하게 살고 싶다'가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이었다. 

현실은 '일 할 땐 바쁘니까 어쩔 수 없잖아?' 라며, 매번 합리화하며 테이크 아웃 커피를 마셨다. 

미니멀을 추구했지만 평생 쓸 거라고 다독이며 비싼 물건을 자주 샀다. 


온갖 이념과 욕망과 유행의 집합체가 바로 나였다. 


이러한 모순덩어리의 한 인간이 반려 인간들과 함께 살기를 꿈꾸고 있다. 

탈도시와 함께 탈직장까지 계획하고 보니 더 땅값이 싼 곳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같이 사는 반려인들의 직업까지 바꾸라고 강요 할 순 없다. 

적당히 타협해서 일단 양평으로 정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다. 


앞으로 브런치에 쓰는 글들은 계획들을 실행해 가면서 겪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 될 것 같다. 

생각과 이념의 변화를 맘껏 실험하고 다듬어가는 과정들을 

각색 없이 담담하게 기록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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