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인 Z Dec 30. 2020

샤이 진보라는 경상도 아버지의 말

이상형의 재발견

이낙연이 당선이 되었고, 그해 여름 찾아간 고향에서 아빠는 대뜸 "내는 마 샤이 진보다"라고 말했다.

10대의 내 일기장에서 늘 악역을 맡아왔던 아빠는 어느덧 내 이해력의 범주에 들어와 귀여웠다.  

그날도 다 같이 식사를 하고 별다른 대화 없이 습관처럼 TV를 보고 있었다. 

흔한 경상도 아버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핵심만 툭-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아빠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형제도 없이 혼자 자란 탓에 

가부장의 롤모델 없이 본인의 삶을 혼자 개척했다. 

부모님은 함께 사업을 하셔서 맞벌이 부부였지만, 가사노동은 모두 엄마 혼자 했다.

한 살 터울의 남동생과 나는 그 어느 가사노동 조차 하지 않고 자랐다. 

지금의 페미니스트 관점에선 엄마의 모든 희생 위에 차별 없이 자랐다는 건 

또 다른 여성차별과 혐오의 과정이었지만 시대의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요즘 기준의 진보에서는 엄청나게 멀지만 자식 교육에서 보면 진보적이었다. 

요구받는 삶을 살지 않아 자식인 나에게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 

다른 부모님들처럼 먼저 나서서 학원에 보내는 적극적인 지원 또한 하지 않았다. 

학구열이 치열한 동네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내 성적에 관심이 없는 부모님이 내심 섭섭했다.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에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친구들의 말은 정말 낯설었고,

막내 남동생 위주로 차별받는 상황에 힘들어하는 친구도 흔했다.  

가정환경의 중요성은 어쩌면 맞는 말이다. 

나는 꽤나 자유로운 가풍에서 자랐고, 내 능력만 된다면 그 무엇을 해도 관여하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랐다.


그가 한 '헛똑똑'이라는 말은 한 평생의 상처였고, 한편으론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이 말을 엄청나게 오해했고, 나의 모든 의사결정을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다.

나의 실패는 내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과 같아서 

그 누구에게도 기대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빠는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가사 분담을 하지 않지만

40이 가까워도 결혼하지 않는 나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애먼 놈 뒷바라지하면서 지낼 바에는 혼자 살라고 해라"라는 말을 전했다. 


어릴 적 나는 표현을 예쁘게 할 줄 몰랐 던 그의 말에 상처를 받았고, 

지금도 날 따라다니는 몇몇의 날카로운 문장들도 있지만 

이젠 그게 그의 진심을 다 담은 말이 아니었음을 안다. 


한 가지 이론으로 모든 걸 설명하면 편하겠지만,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더니 

내 트라우마와 완벽 지향의 성향은 아빠 혼자 만의 영향력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만들어 낸 프레임 속에서 얼마나 갇혀있었는지 모든 걸 왜곡되어 보았다. 

성공하지 못해 떳떳하지 못했고, 

평생을 아빠를 원망했고, 

한편으론 미워했으며, 

때때로 거리를 두었다. 


속 편하게 한 사람만 미워하면 편했겠지만, 

아빠가 원하는 게 성공한 딸이 아니라 나의 행복이라는 진실은 

모든 곳에서 조금씩 누적되어온 사회적 프레임을 걷어내게 만들어 주었다. 

아빠는 나에게 인생을 더 살았다는 이유로 쉽게 조언을 하거나 요구하지 않았고 

그저 내가 행복하기만을 바랬다. 


환갑이 넘은 아빠의 일생은 

무일푼으로 시작해 두 자녀를 키웠고, 한 자녀를 출가시켰고, 빚은 지지 않았다.

남은 나를 위해 만기가 된 저축은 해지하지 않았고, 주택연금으로 노후도 준비를 해 놓았다. 

나이가 들면서 이 평범함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뒤늦게 감탄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나와 생각이 다른 그의 말도 즐겁게 듣는다. 


아빠는 무학이었지만 염치를 알았고, 정직했고, 소박했으며 언제나 한결 같이 그 자리에 있어준 사람이다. 


공지영이 말했던 이상형의 문장을 보고 감탄했는데, 내 아버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2011년의 나는 그 문장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지만, 그런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없었다. 

늘 찌질하고 서로를 갉아먹는 연애들의 연속에서 상처 받았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며, 

아무런 반성 없이 또 다른 찌질한 연애를 반복했다. 


책은 늘 보았지만 내가 변할 마음이 없었으니 그저 잠깐의 진통제 정도로만 활용되었다.  

여기까지 움직이기에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토록 느린 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도 나이고, 다독여야 할 사람도 나다. 


oo 아 잘했어. 


오늘도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글 쓰느라 수고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