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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Jan 25. 2021

노마드의 삶

뿌리 없는 자아

2007년의 미국에선 늘 이런 질문을 받았다.


너 어디서 왔니? 일본?


::: 아니?!


중국?


::: 아니!!!!!!!!!!!!!!


그럼 대체 어딘데?


::: 한국


설마,, 북한??


::: 놉! 사우스 코리아..


북한을 알면 그나마 설명이 편했지만

전쟁을 피해 망명을 온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았고,

한국이 어딘지도 모르면

네가 언급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다는 설명을 하며

알 수 없는 약소국 출신의 굴욕감을 느껴야 했다.


2008년의 호주에선 지금 우리가 동남아시아 노동자를 대하는 그 태도를 고스란히 겪었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지나가다가 계란을 맞는 남자 친구들을 목격했고,

결혼비자를 들먹이며 추행하는 유럽 할아버지들을 견뎌야 했다.


2009년의 인도에선 나의 걸음걸음마다 쫓아다니는 마을 아이들을 뿌리쳐야 했다.


나란 사람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가 있는 곳에 따라서 나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늘 외부의 시선으로 나를 보았고, 달라지는 시선에 따라 감정이 바뀌었다.


20대의 방황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은 줄 알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방황했다.

영화계에서 일하면서 꾸준히 모난 부분들이 깎여나갔고,

어느새 무색무취의 인간이 되었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바라보고 판단하며 성실한 노동자가 되었다.

'헬조선'이라는 말을 주워 담으며 우울했고 늘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 어느 곳도 가난한 이민자에게는 친절하지 않다.


2015년의 홍콩에선 강남스타일을 추는 다양한 인종의 무리를 보며 어리둥절했다.

2017년의 한국은 폭력사태 없이 대통령을 바꾸었고, 평화시위문화를 수출했다.

2019년의 터키에선 BTS의 나라에서 왔다며 서로들 와서 사진을 찍자고 난리였다.

2020년의 한국은 팬더믹을 지나며 세계인이 궁금해하는 나라가 되었다.


<2030 축의 전환>에서는 2030년쯤 되면 그렇게 무시했던

'중국, 인도, 동남아, 아프리카' 쪽 나라들로 부가 이동할 것이라고 말한다.

작년에 한창 유행했던 <팩트 풀니스>도 같은 시선을 가지길 요구했다.


우린 사실 충분히 잘 살고 있다.

다 같이 잘 살기 위해 고민한다고 해서 나라가 절대 망하지 않는다.


몇 년 간 해외 직구를 열심히 했는데,

'아마존'과 '쇼피'라는 플랫폼에서는

한국의 제품을 역으로 직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어느새 한국은 따라 하고 싶은 문화가 되었다.

대체 언제까지 모든 시행착오를 제거하고 앞만 보고 달리라고 몰아세울 건가?


세상의 미의 기준에 자신이 안 맞다면

내가 새로운 미의 기준이 되겠다고 한 화사처럼

각자의 삶의 기준을 잡고 그 기준에 맞춰 살아도 괜찮은 사회로 갔으면 좋겠다.


단지 비교의 늪에 빠져 더 나은 것 같은 사람을 보고 괴로워하고

나 보다 힘든 사람과 연대하기보다 그들이 내 것을 빼앗을까 두려워한다면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


많은 어른들의 세계에선 여전히 미국이 최고고, 일본제를 좋아하며 중국을 무시한다.

사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구리다는 건 이미 ‘샤오미’의 등장에서부터 무너졌다.

그냥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촬영 때문에 작년에 중국의 심천이라는 곳을 갔었다.  

중국은 이미 전자페이 시스템이 일상이 되어있었다.

그들의 마천루를 보며 함께 갔던 감독은 음식에서 냄새가 난다며 비하하기에 바빴고,

환전해서 바꿔간 현금으로 아무것도 살 수 없다고 분개했다.


인지적 편향이라는 말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인지로 모르겠다.

그건 경험치의 결과이니까 생존 본능에 유리한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경험치를 적용하기엔 우리의 인지 속도와 판단 능력보다 세상이 더 빠르게 바뀌고 있다.

무비판적으로 배척하거나 수용하는 태도는 위험하지만

열린 태도로 자신만의 기준점을 가지고 지켜보고 취할 것들을 가리는 경험은 필요하다.


"뿌리를 잃고 역사를 잃은 민족은 갈 곳을 잊는다."라는 문장은

어느 민족주의자의 말처럼 여겼는데,

현대의 언어로 해석해보자면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기준이 없는 사람은 끝없이 방황한다는 말과도 같다.


그 옛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 형님의 말이 여기서 또 나온다.


어느덧 고향을 떠나 산 세월이 고향에서 살 던 시간보다 많아졌다.

반평생 떠돌아다닌 내 삶은 어떻게 보면 거대한 자기부정의 과정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부러 밝히지 않으면 내 억양으론 고향을 알지 못한다.

고향을 떠나보고자 억지로 억지로 성적에도 맞지 않은

대학으로 지원을 하면서

2년이란 세월을 대입을 위해서 낭비해버렸다.


20대는 늘 외부인으로 보냈다.


늘 주변인으로 살았지만 주류에 진입하기 위해서 무던 이도 애썼다.

아마도 내가 쓴 '외부인'이라는 시나리오는

주류 사회에서 뿌리내리고 살아보려고 애쓰다

결국은 실패하고 마을을 떠나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방황하는 내 모습을 투영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온 대가로

10년을 희생하고 버텨내면서 살았다.

그 속에서도 그나마 가진 걸 빼앗길 까 봐 주변 사람들과 연대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계를 떠나갔지만 그냥 낙오자로만 생각했다.

결국 동기 중에 영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경쟁자가 확 줄었다고만 생각했다.

버티는 놈에겐 결국 기회가 온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영화계는 소위 '알탕 영화'가 투자받기도 쉽고,

내가 마지막으로 일 했던 영화 또한 그 분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내 시나리오를 다시 보았는데

이대로 가다가 투자를 못 받을 것 같은 불암감에 휩싸였다.

내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를 여자에서 남자로 바꿨다.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고,
나는 내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나는 너무 병들어있었고, 그만둬야 했다.

떠돌이 삶을 그만두고,

내 뿌리를 찾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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