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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Mar 12. 2021

이부진과 셔터맨

결혼의 민낯

내 동생의 꿈은 셔터맨이고,

내 파트너의 이상형은 이부진이다. 

나 또한 백마 탄 왕자님의 구원을 받는 동화를 읽고 자랐고,

나만 바라보며 모든 걸 다 갖춘 현대판 왕자님인 재벌과의 연애 이야기는 

질리지도 않았다.  


삶에 대한 고단함과 막연함은 누구나 느끼는 두려움일 것이다. 

나보다 조건이 나은 사람을 만나 기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남녀불문 모두의 마음속에 내재되어있다. 

그 조건이라는 게 경제적인 부분이 큰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러한 환경에서 실제 결혼은 드라마 속 이야기와 다르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그 현실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나는 결혼에 관심이 없었고, 누군가를 낳아서 책임을 진다는 것도 너무 두려웠다. 

더구나 영화를 할 때는 수익이 불안정하기도 했고, 

경력 단절이 두려워 

입봉을 할 때까지 미루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뭐가 먼저 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결혼에 관해서 아무런 환상이 없었다. 


7년을 만난 파트너에게 나는 결혼식장에서 부모님들을 처음 보고 싶다고 말해왔는데, 

언제까지 내 생각만 할 수는 없었다. 

귀촌을 준비하고 땅을 알아보던 중에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라도 하라는 파트너 부모님의 말에 

내 부모님을 먼저 찾아뵈었고, 

그들과 나의 민낯을 보았다. 


결혼을 마음먹으니 

나와 파트너의 삶이 송두리째 시장의 논리로 평가받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았는데, 

사회적 성공도 모아놓은 재산도 없는 30대 커플의 인생 전반이 헛살아온 걸로 평가받았다.

내 모든 삶의 가치관이 부정당했다. 


내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인가?


나이가 많아서

학력이 부족해서 

외모가 별로라서

모아놓은 재산이 없어서

자신감이 없어 보여서

종교가 달라서

직업이 불안정해서

부모가 가진 재산이 없어서


이기적인 두 존재가 기적처럼 만나서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협력해서 살아가겠다는 마음은 

안목이 없다는 말로 평가절하되었다. 


남과 비교하고 서로의 모자람을 탓하기 쉬운 결혼제도 속에서 

사회에서 정해놓은 기대와 수준과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 

결혼은 개인이 하는 게 아니라 집안이 만나는 거라고들 말한다.  

그 와 중에 많은 커플이 무엇을 위해 다투는지도 모르고 헤어지기도 한다. 

혼주, 예물, 예단, 상견례, 축의금, 폐백..

잘 만나던 파트너의 모든 걸 계량화하고 수준을 정하고 평가를 한다. 

매매혼은 언제까지 살아 남아 수많은 커플에게 고통을 줄 것인가.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끝없이 협상하고 타협하고 서로 도와서 살아가겠다는 마음 없이는 

언제든 깨질 수 있는 게 결혼이다. 


혼인 적령기 같은 말이 익숙하고 

결혼이 늦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걸 보면

나 또한 이러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년 전 내 동생이 결혼할 때 

집 값을 다 마련하지 못하고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파혼 위기까지 갔었다. 

예물, 예단, 혼수 없이 동생 부부 스스로 일궈나가도록 격려한 부모님의 발언은

없는 사람의 허세로 치부되었다. 

물론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살고 있지만, 

그때 부모님은 자신들의 인생까지 부정당하는 상처를 견디며 

더 상처 받았을 동생을 위로하고 지켜봐 주었다. 


그때 난 참 우리 부모님이 좋았다. 


그런 부모님이 

자신들이 고통받았던 방식 그대로 나와 파트너에게 고통을 주었다. 

동생의 말 대로 딸 가진 부모님의 마음이 다 똑같기 마련이겠지만

내가 아무리 그러한 사실들로 머릿속을 채워도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10년을 끌어왔던 직업도 버렸기에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했고, 

우리 부모님이 나의 결정들에 어떠한 말을 해왔었는지 잊어버렸다. 


매번 그랬듯이 네가 감당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말라는 말로 돌아왔다. 

나의 선택을 믿었기에 단 한 번도 내가 하고 싶다고 한 걸 반대한 적이 없지만 

이번의 선택은 실망이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어린 시절 이후에 정말 오랜만에 '헛똑똑이'라는 말을 들었다. 

평생의 상처였고, 내 삶의 원동력이었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정말로 극복하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내 마음을 꺼내보았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애썼던 세월이 참 고단했다고,

영화를 하면서 힘든 적이 많았지만

그 일을 탐탁지 않아했던 마음을 알기에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다고,

기댈 곳 없이 홀로 견디는 시간들이 참 힘들었다고 말했다. 


가만히 소리 죽여 흐느끼며 듣고 있던 엄마는

미안하다고 말했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같이 살면서 새로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하면서 

다른 파트너를 찾아보자고 말했다. 


와..나는 대체 뭘 기대했을까?


강신주의 말이 맞았다. 

누군가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는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주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 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의 상처를 언급하며 흘렸던 눈물과 고백이 마냥 순수한 건 아니었다. 

나의 어려움을 말하면 조건 없이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거라는 착각이 낯 뜨거워졌다. 


결혼을 위해 부모님의 허락을 구할 이유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위해서 결혼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  


아직 우리는 결혼에 대한 입장도 다르고, 

삶에 대한 기대와 방향도 다르다. 

더 많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고 타협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고맙게도 나의 파트너는 잘 들어주는 사람이고, 독단적인 나를 잘 제어해준다. 


우리 부모님에 대한 그 어떤 평가 없이 '잘 살아보자'라는 그의 말이 참 고마웠다. 


남에게 의지 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자라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하다. 

누군가에게 기댈 줄 모르는 독선 또한 같이 자랐지만 

그건 살면서 내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깨우쳐야 할 몫이고, 

내게는 나의 모자람을 채워줄 파트너가 곁에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살겠다는 그 기적 같은 마음을 

자랑스러워하자.


앞으로의 인생도 많이 남아있으니 우리의 속도와 방식으로 

조급해하지 말고 파트너와 함께 잘 헤쳐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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