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만병통치약 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에는
방학숙제로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 과제를 택일로 가져가야 했다.
나는 매번 그림을 그려갔다.
그림 그리기를 즐겼다기보다는
그걸 했을 때 잘한다는 칭찬을 받는 그 감각이 좋았던 것 같다.
대단한 그림 실력이 있었다기보다는
꼼꼼한 편이라 내가 그린 밑그림에서
다른 선을 침범하지 않고 빈 곳을 잘 채웠다.
그 시절에는 그 정도만으로도 대단한 재능을 인정받았다.
주위의 칭찬과 주변의 인기를
과도하게 신경 쓰는 아이였기에
매번 주목받는 삶을 살았지만
늘 불안했다.
그런 나의 불안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
글짓기를 포함해서
일기 쓰는 것도 극도로 싫어했는데,
다른 사람이 읽는 걸 전재로 쓰는 글이라
아마도 나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본능적으로 꺼렸던 것 같다.
남들보다 잘 웃는 아이였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그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남의 칭찬의 기준에서 내 삶을 선택해왔다.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쉽게 포기해버렸다.
꾸준함과 성실함은 나와는 먼 개념이었다.
뭐든 빠르게 습득하는 편이라
초반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다.
그건 내가 배움을 전제로 한 학생일 때나 유요한 일이었다.
사회에선 무언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걸 배우지 못했다.
시간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늘 포기해버리고
새로운 걸로 넘어가버렸다.
초반에 요령 껏 잘하는 것 정도로 받는 칭찬이 끝나면
급격히 열정이 식었다.
남들이 보면 늘 도전하는 삶이었지만
칭찬 중독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얕고 넓은 잔 재주로 연명하던 나에게
영화는 천직처럼 보였던 적도 있었다.
매번 주제가 바뀌고,
새로운 걸 빠르게 습득해야 해고,
초반의 요령만 잘 피우면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득하게 앉아서 내 이야기를 써야 하는 시점에 와서야
또다시 도망가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 산업을 돌아본다며 온갖 불만을 쏟아 내었지만
정작 도망가기 위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본다.
생각의 생각의 꼬리를 물다가
이 모든 게 잘한다는 칭찬받기에 급급한 삶을 이어온
결과인 것만 같았다.
그래, 내려놓자.
아무리 마음먹어도 잘 바뀌지 않았고,
변화마저 잘 해내어 칭찬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꼼꼼히 세운 계획들은 보란 듯이 틀어졌고,
또다시 불안은 나를 잠식했다.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어디 인간 성향이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그나마 글을 쓰면서
이제야 조금씩 나란 사람에 대해 익숙해지고 있다.
글쓰기의 만능통치약설을 말하며 무조건적인 예찬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글쓰기라는 작은 변화를 줬고,
기다렸다는 듯이 많은 생각들이 탄력을 받으며 변하고 있다.
아니다. 변했다기보다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겨우 나를 조금씩 알고, 받아들이려 노력을 한다.
억지로 썼던 '연출부 일기'가 기록으로 남아
나의 각성에 영향을 주었고,
다시 돌아가기 않겠다는 결심의 자양분이 되었다.
지금의 이 글도 훗날 변한 내 시선에서 보면 낡고 오글거리겠지만
그건 그때 다시 반성하기로 하고
계속해서 변하는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다.
기록의 힘 따위의 말로 마무리 짓고 싶지 않지만
적당한 문장이 생각나지 않으니 이쯤에서 멈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