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비 10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인 Z Jun 18. 2021

코로나 시기의 영화 촬영 현장

그곳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당시 촬영하던 영화는 유행에 따라 주연 배우 중 한 명을 외국 배우로 캐스팅을 하였다.

해당 언어를 한국인 배우가 배워서 외국인인 척하는 것보단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새로운 장소에 대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해외 촬영 또한 끼워 넣어서 영화는 기획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누구도 예상 못했던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했다.


혼란기 속에서 체력의 한계에 부딪히자 모두가 부지런히 자신들의 바닥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서 나란 인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촬영을 허가받았던 많은 장소들이 코로나를 이유로 허가를 취소하였다.

외국배우의 비자와 자가격리 문제로 모든 스케줄을 다시 짜야했다.

반년을 준비했던 것들이 무색하게 모든 걸 다시 준비해야 했다.

촬영은 촬영대로 해야 했고, 쉬는 날은 새롭게 장소를 찾고 확인을 하며 이동하는 날로 채워졌다.

내부에선 잠깐 진행을 멈추고 재정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제작사는 끝날 때까지 사람들을 쥐어짜면서 촬영을 강행했다.  

기간이 늘어나면 제작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듯 인권은 무시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스케줄이 바뀌었다.

연출팀의 업무의 많은 부분이 스케줄에 따라서 각 팀의 진행사항을 체크하고 관리를 하는게 주를 이루기 때문에 스케줄이 바뀌면 모든 일을 다시 해야 했다.

쉬는 날은 언제인지, 다음 날 우리가 어느 도시로 향할지도 정해지지도 않은 채

아슬아슬하게 촬영을 이어갔다.

지방을 전전하며 단체로 숙소 생활을 했다.

쉬는 날도 쉬는 날이 아니었고 늘 대기 상태였다.

제작사는 코로나를 핑계로 회식도 진행하지 않았고,

그에 상응하는 온전한 휴식의 제공이나 금전적인 보상도 하지 않았다.

휴차 날 용기 있게 핸드폰을 끄고 일에 관련된 전화를 안 받고 보낼 깡도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감독과 배우들이 펜션을 잡고 놀았다는 소식이 들렸고 배신감이 들었다.

피로와 불만은 빠른 속도가 쌓여갔고,

풀어낼 시간 적 여유가 없으니 점점 예민해졌다.


어느 날 제작팀의 친구가 해고를 당했다.

쉬는 날 술을 마시고 해운대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었던 그를 감독이 보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촬영 진행 때문에 애를 쓰는데, 혼자 술을 마시고 돌아다녔다는 괘씸죄가 이유라고 했다.  

쉬는 날 무엇을 하든 간섭받을 이윤 없지만,

그는 해고를 당했다.

누구는 평소에 제작 환경에 불만을 가진 그와 피디가 많은 싸움을 했었고,

이번 일을 계기로 정리된 거라는 말도 했다.

정말 터무니없는 처사였지만 그를 위해 나설 순 없었다.

 

엉망으로 꼬인 스케줄 덕분에 세트장을 철거해야 하는 날이 다가올 때까지

촬영 분량을 다 찍지 못했다.

시나리오의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했고,

이번 기회에 반복되는 액션 장면들이 많이 정리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감독은 그 어느 장면 하나도 포기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게 감독의 역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 결론이 세트 촬영 마지막 날 24시간 촬영으로 이어질 거라곤 예상도 못했다.

표준 근로제도가 도입된 이후엔 처음이었다.


모든 팀들이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우리 팀도 모여서 의논을 시작하였다.

조감독은 결정된 사항들을 전달하며 자기는 자리를 지켜야 하니 24시간 촬영을 하겠다고 말했다.  

혼자 촬영을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이 와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결정은 각자의 몫이라고도 말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결정이 된 일이라 하루 만에 다른 팀들처럼 대타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연출팀 업무상 인수인계의 어려움도 있었고,

더군다나 전체 영화의 연결을 체크하는 나의 업무를 하루 만에 누가 와서 대체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어색하게 눈치를 보는 와중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업무가 지금 현장에서 같이 있지 않으면 나중에 정리하는 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

남아 있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액션 시퀀스 분량이었고, 동시에 10개 이상의 카메라를 세팅해서 촬영하는 장면이라

촬영된 소스만 보고 정리할 자신이 없었다.

나의 발언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자신들도 남아서 촬영을 하겠다고 말했다.

막내 포지션의 친구만 다음날 부산에서 수원으로 운전을 해서 이동해야 하는 스케줄이라서 열외가 되었다.

VFX를 담당하던 친구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울면서 그 자리를 뛰쳐나갔다.

마음 한편으로 찝찝했지만, 그때 난 내 결정이 합리적이라고 믿었다.

지금껏 영화 현장의 처우 개선에 관해서 많은 불만과 의견을 말해왔었고,

내가 결정권자가 되면 절대로 이러한 상황을 만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 객관화가 안 된 사람은 이토록 어리석다.


결국 24시간 촬영이 결정되었다.


친절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을 신뢰했다.

촬영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점점 바닥을 보이는 나의 인내심에

팀원들과 거리를 유지하려 최대한 노력했다.

출퇴근 길에 세트장과 숙소를 한 시간 넘게 혼자서 걸어 다녔고,

밥 먹는 시간이라도 혼자 보내면서 마음 공간을 확보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24시간 촬영은 그런 나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다음날 촬영 현장에서 못 보던 얼굴들을 마주했다.

표준계약을 하지 않는 헤드급 스텝들과

연출팀만 24시간 촬영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촬영장의 스텝들은 시대에 요구에 맞게 바뀌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부당한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필요만 따져서 한 결정이 나보다 약자인 친구들에게 강요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난 그 자리에서 제일 경력과 나이가 많았다.

지금껏 말해왔던 것처럼 24시간 촬영의 부당함을 거부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어떻게든 촬영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나를 대체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나의 이기심과 나약함으로 변화의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새로운 스텝들의 활기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묘한 동질감으로 어쨌든 24시간 촬영이 시작되었다.

화재로 인한 폭발 장면 구현으로 세트장은 하루 종일 기름 냄새에 절어있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마스크 수급이 어려운 시기라 마스크를 자주 교체할 수 없었다.  

잠깐의 야식 시간에 마스크를 벗으니 얼굴들이 말도 아니었지만,

기름 연기로 인해 까맣게 변한 서로의 얼굴을 보고 깔깔거렸다.  

시커멓게 변한 마스크나 동영상으로 찍으며 이 밤이 어서 끝나 여기서 탈출하고 싶었다.


아침이 더 밝아오기 전에 세트 밖에서 차를 세워두고 찍는 장면을 위해 잠깐 밖으로 나왔다.

하루 종일 기름 태우는 냄새를 맡아서 그랬을까?

24시간 넘게 잠을 자지 않아서 그랬을까?

깨끗한 공기와 새벽의 여명에 정신이 오히려 더 몽롱해졌고, 눈 앞이 흐렸다.

그즈음에 하나둘씩 숙소로 들어갔던 스텝들이 돌아왔다.

세트 철거를 위해서 빠르게 장비를 빼야 했기 때문에

마지막 촬영 준비와 동시에 돌아온 스텝들은 장비 정리를 하였다.

고생했다는 스텝들의 말이 느리게 들렸고,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잠깐 잊어버렸다.

막판에 모든 게 정신없이 돌아갔고,  

돌아오지 않는 막내 친구가 떠올랐다.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기분이 가라 않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OK/ NG를 적어놓고 마지막 촬영을 위해서 모니터를 급하게 옮기고 있었다.

미술 담당 친구가 달려와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장면이 OMIT 되었는지 물었다.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그 장면을 찍지 않고 세트장으로 들어갈 뻔했다.

아무도 내 탓을 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창피했다.

바닥난 체력으로 통제력을 잃었다.

뒤늦게 늦잠을 자고 돌아온 막내 친구에게 남은 장비 정리를  떠넘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머지 팀원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잠깐 자고 일어나서 수원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모두들 더러운 기분을 씻기 위해 편의점에서 술을 사 왔고,

잠에 취해 술에 취해 진탕 마셨다.


이성의 끈을 붙들고 생각해보면 늦게 온 그에게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땐 그만한 이성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체 인력을 구하지 못해서 촬영 진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은 내가 책임 질 일이 아니었다.

나는 결국 감당도 못할 걸 책임지고, 애먼 약자에게 화를 냈고,

그런 내 모습을 스스로를 혐오하는 상황만 만들었다.  

이상만 높은 겁쟁이는 매번 비겁한 선택을 하며 누구도 만족 못할 상황을 만들면서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나는 속으로부터 무너졌고, 내가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깨닫고 좌절했다.

그날 이후로 팀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점점 피하게 되었다.

10년을  하면서  내려갈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바닥을 보았고,

그게 내 바닥의 끝이 아닐까 봐 두려웠다.

 문제를 인정할 용기도, 그렇다고 나아갈 용기도 없이 그저 영화가 끝나기 만을 고대하며 

스케줄표에 하루하루 엑스를 치며 버텼다.


어디서부터 잘못이었을까?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냥 차라리 같이 욕을 하고, 위선자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프로다운 척을 하며 스스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날의 일을 끝없이 후회하다

더 이상 영화가 하고 싶지 않았다.  

열정적으로 달려들었던 일을 버리고 나니
이젠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부딪히고 깨져야 할지

깨지지 않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건지

아님 다들 이러고 사는 건지

한 인간이 사회에 속한 상황에서 변화가 가능하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


나약한 인간들끼리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가시를 뽑아 들고

서로를 찌르고 피 흘리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 그냥 다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혼 없는 알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