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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Oct 19. 2015

정글 보다 더한 세상이다

정글의 논리가 바뀌고 있다, 아니 바뀌여야만 한다


세상은 정글이다?!

현대사회는 정글이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아마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는 비슷한 직장인들은 충분히 공감하실 것입니다. 늘 갑-을 관계에 놓여서 허우적대고 있으며, 그래도 갑의 위치에서 계속 가려고 노력은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군가의 지배 논리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인간사회 = 동물사회?!


지금까지의 사회 논리를 피라미드형 계층으로 구분할 때, 내가 위치하는 곳에서 위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거느릴 수 있는 '을'의 숫자가 많아서 결국 '갑'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좀더 많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자본으로 인하여 위로 올라가는 싸움을 계속해왔으며,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곧 나의 능력으로 치부되는 것이 제가 바라보는 지금의 세상입니다. 지금의 자리에 안주해있는 것이 아닌 내 다음의 위치로 올라가기를 강요받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역량과 능력인양 인정받는 분위기로 지난 60여년간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정글의 성장 배경에는 '경쟁 논리'가 숨어 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볼 때, 눈부신 경제발전에 대한 부분은 모두다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엄청난 스피드로 성공을 거두었고,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과거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이제는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성장을 했다는 사실이지요. 부풀려진 면이 없진 않겠지만,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까지 50여년 만에 성장을 했다는 사실에 전세계가 감탄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에 대한 주요 원인이 바로 시장에 대한 '경쟁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분야던지 경쟁해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 늘 퇴보, 퇴행, 퇴진을 거듭해왔고, 과거 모 개그맨의 유행어 카피처럼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빠른 경제 성장을 거둘 수 있었고, 그래도 편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요.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 과연 더러운 세상이 맞을까?>


세상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 각자의 지배논리(헤게모니)로 지배와 피지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부분이 경제활동에 그것이 국한되어 있고 한정된 자원을 나눠먹기(파이 쪼개기)식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군가와의 ‘경쟁’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숙제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좁은 한국땅에서는 그러한 경쟁논리가 없이는 살아남기 불가능했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걸 자연스럽게 어렸을때부터 강요받으면서 치열함 속 과열된 경쟁 의식이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웠습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지 않고서는 내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각자의 정치(경제)논리를 빌어서 자신만의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베어버렸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을 줄이거나, 다른 부분으로 발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한 사람입니다. 

*여기서의 정치란 자신과 주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행사는 ‘처세’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조직 내부 혹은 외부에서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지배와 피지배에 대하여 좀더 풀어서 설명하면, 여기서의 지배는 어떤 도구, 돈(머니게임) 혹은 정치권력이든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주도권을 가진 쪽이 그걸 가지지 못한 쪽에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쓰는 하나의 논리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서양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나이’라는 도구가 있습니다. 동갑혹은 동년배가 아니면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어린 사람을 지배하곤 합니다. 이로 인하여 서로간의 그룹이형성이 되고, 그걸로 인해 아군도 혹은 적군도 되는 것이 지금의 한국입니다. 

해당 메커니즘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이 정치입니다. 국회의원, 대통령, 지방자치리더 등에 대한 선거는 후보군에서 투표로서 선발이 결정되는 구조입니다. 이때 경쟁논리가 형성이 되고, 선발이 된 이가 선발되지 못한 이의 위에 군림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대한민국만이 그런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은 왜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분명 그들 간의 미묘한 갑과을의 관계는 분명 형성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일반 기업에서도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영업조직이 기업 내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보험, 자동차, 제약 등의 경우 같은 팀이라도 팀원끼리의 경쟁을 부추기는 등의 전략을 피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옆의 동료가 곧 나의 적이 되는 구조를 통해서 조직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것에는 늘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해당 시장의 크기나 상황에 따라서 호황이고 불황일 경우에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옆 사람의 지분율(?)을 뺏어오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하지, 조직 차원에서 다른 시장으로 가기 위한 노력이나 시장의 사이즈를 키우기 위한 노력은 미비한 경우가 많이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결국 서로간의 피튀기는 경쟁을 통해서 생존을 배웠던 이들에게는 이제 '저성장 시대'에서의 생존에 대한 방법은 생소하기만 할 것입니다. 



더 이상 경쟁의 논리로는 정글에서 생존할 수 없다. 아니 정글이 사라질 수 있다.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열정적인 마음과 태도를 가지고 어떤 분야던지 뛰어들어서 높은 성과를 내놓는 것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때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지만 결국 아무도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노력을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시장의 1등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으로 인하여 제 살 갉아먹기 식의 경쟁을 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는 이상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개인의 삶'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본주의 과연 사다리 차기 일까>

높은 연봉이나 사회적 대우를 받는 직장을 선호하면서(물론 시장의 논리로서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음) 대기업에는 너무나 많은 지원자가 몰려서 과거와는 다르게 취업에 대한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진 점이나, 전문직 등에 대한 진입장벽이 현저하게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그 사이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소위 사타리 타기 게임을 해서 먼저 사다리에 최상단으로 올라가고,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가능성 자체를 닫아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다리 걷어차고 올라서야만 능력자일까? 

과연 위로 올라갈수록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을까? 혹은 그러한 위치에 올라간 사람이 자신의 '능력'으로 그런 자리에 올라갔다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까지 그러한 위치를 고수할 수 있을까? 

적어도 관료제 중심의 한국사회가 과거서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앞으로도 꾸준히 걸어간다고 가정하면, 「Peter Principle」경영이론에 따라서는, 지금의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이 꼭 자신의 능력 때문에 위로 올라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해당 이론의 중심에는 보상이라는 메커니즘이 숨어있지만, 이것이 '승진 혹은 승급'에 국한된 관료제 시스템에서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능력이 좋다고 꼭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진짜 능력있는 사람은 그 조직에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올라선 이들은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것이 게임의 논리입니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짓밟기 위한 그 어떤 비양심적인 수단에도 자연스레 행하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러한 부분은 세상의 심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오래도록 그런 지위나 권위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배와 피지배의 세상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이러한 논리에서 성장한 대한민국의 커뮤니케이션은 지시와 수령, 명령과 복종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사회 이전에 마치 계급사회인 왕족, 양반, 상민 등이 있는 것과 같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명령을 하는 쪽(지배층)과 명령을 받는 쪽(피지배층)이 상황에 따라서 철저히 분리되어지며, 끊임없이 요구를 보내기 마련입니다. 

왕따라는 사회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도, 주류와 비주류 문화를 주도하는 특정 세력이나 그룹도 마찬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갑 그리고 을'이라는 계약관계로 사람을 자신의 마음대로 부리거나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과거보다 좀 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겉으로는 파트너쉽이라고 말하고 지시와 명령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지시와 명령에는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시와 명령으로는 과거 보다 더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과거에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성공을 해왔습니다. 파레토의 법칙으로 전체의 20%가 80%의 시장을 지배하고, 조직에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물론 그 법칙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통할 수 있을까요? 더 이상 리더의 말이 모두에게 같은 영향력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언론의 커뮤케이션 방식만 봐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개인 SNS가 결국 하나의 매체로까지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단순 Top Down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면, 그 안에서 지속적인 확대재생산 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의 질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에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언론 뿐 아니라 조직 및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가 그 답의 시작일 수 있다. 

결국 쌍방향의 단계별, 그룹별, 상황별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 생각이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적 활동이 모여서 사회의 변화, 지배논리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 소비에서 공유 및 확대재생산의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전개되어야만 그에 대한 양적ㆍ질적인 부분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글로벌 기업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수평적' 방향 및 형태를 확인할 수 있고, 그로 인한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산하거나 실현할 수 있다는 다양한 케이스만 봐도 폐쇄적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갖고 올 수 있는 폐해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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