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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Feb 14. 2018

우리는 은퇴없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을 선택할 때 얼마나가 아니라, 언제까지라 물어야 할지 모른다




지면관계상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어, 담지 못한 이야기 등을 추가로 하거나, 그 이상의 생각 등을 추가해서 적고자 합니다. 되도록 원문은 해당 사이트에 가서 보시고, 뒷 이야기는 브런치에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구독해주시는 분과 풍성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왜 일을 할까? 부모님 세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했다. 모두 그랬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살게 되는 길’이라 생각했고, 그 중심에는 늘 가족이 있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만 했고,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했다.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았던 분들이 하나 둘씩 은퇴를 해서 제 2, 3의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신다. 우리도 그들처럼 은퇴를 할 수 있을까.


2018년 생산 가능인구 감소의 시작의 해다. 올해부터 일할 수 있는 연령대의 인구가 점차 감소한다고 한다. 반대로 보면 적극적으로 소비 가능한 연령대가 감소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더 이상 내수시장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당분간 힘들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생산가능인구의 연령을 늘려야 할 수도, 은퇴 수명을 연장해야 할 수도, 혹은 은퇴 자체를 기대하지 않아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먼저 겪었다. ‘잃어버린 10년’이라 말하는 수년 동안의 저성장을 최근 벗어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기가 호황으로 전환되는 것 같지만, 문제는 일할 수 있는 절대적 인구가 감소되어 일자리가 남아서 주변 국가로부터 적극적으로 인재 영입에 나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들 정원을 채우지 못해 예년에 비해 약 40% 정도의 입학 정원 축소가 예상된다고 하니,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예측이 더더욱 어렵게 되고 있다.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 
[일을 지속해야 할 이유 찾기]


은퇴, 누군가에게는 해방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사형선고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 우리 부모님 세대를 보면 딱 후자 같다. 분명 그 이전의 할아버지ㆍ할머니 분들은 그렇지 않았다. 은퇴와 함께 삶을 마감하거나, 남은 여생을 소일거리를 통해 살아가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시대도 환경도 바뀌면서 단순히 장수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나이를 먹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주변에 계시는 어르신(거의 아버님뻘)들의 실제 나이를 듣고서는 놀라곤 한다. 너무 건강해보이기도 하고, 겉모습만 볼 때 '노인'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죄송스럽게 느껴진다. 


직업적인 면만 봐도 그렇다. 현 법령상 62세(공무원 기준) 이상이 되면 은퇴의 대상이 된다. 아마 그 분들 대부분이 "아직은 일할 만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근로자를 고려하여 기업마다 계약 연장 기회를 주거나, 통상임금을 적용하여 은퇴까지 받게 될 임금을 점차 줄여가면서 은퇴 시기 자체를 늦추는 방향도 고려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정년을 연장하는 것이 직장생명연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마도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 가 그러한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는 세대가 될 것이다. 이미 과잉 생산으로 잉여가치가 남는 상황에서 더 많은 소비를 발생시키기 위한 기본 소득과 유사한 형태로 임금을 분배하는 등의 정책은 곧 곶간을 바닥나게 만들 것이다. 


운이 좋아서 당분간 지속이 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어렵다. 해가 갈 수록 직무 또는 직업도 끊임없이 대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조직에 기대어(혹은 기생하는) 직장생명을 연장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타파하기 위한 스스로의 생존 전략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게 '금전적 문제'에 국한되어서는 결코 오랫동안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특정 직장으로 부터 오는 이미지, 명예 등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그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해도, 거기서 어떤 일을 해서 대접을 받는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 S모 대기업에서 댓글만 다는 직무가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혀를 찼다. 그 일을 하던 사람은 과연 그러한 일을 한다고 주변에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혹은 그런 일을 통해 나중에 더 가치있다고 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를 알고 그 일을 시작했을까 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 "너나 잘해"라는 핀잔을 들을지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만, 그 일을 통해 어떤 성장과 가치를 주변에 만들어내고 있으며, 절대 다수의 사람으로 부터 어느 정도의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결코 그런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죽을 때 까지 과연 몇몇의 직업을 가질지 혹은 몇 군데의 직장을 거쳐서 은퇴를 할지를 생각해보면 막막하다. 단, 적어도 어떤 일이든 본인 뿐 아니라, 그 일과 연결된 다수의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일이여야만 가치가 있다. 또한 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형태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가치이지 형태가 아니다. 세상이 변화하는 것은 그 형태이지 가치가 아니다. 


일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래야만 그 일(활동)을 오래도록 할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이 누구와 연결되고, 누구와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 받는지를 살펴보자. 그러면 그 일을 통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즐기는 이에게는 얼마나 그 일을 해야하냐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묵묵히 그 일을 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오래도록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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