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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Mar 20. 2018

직장,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생존을 위한 시작은 우리 관점의 변화부터이다



지면 관계상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어, 담지 못한 이야기 등을 추가로 하거나, 그 이상의 생각 등을 추가해서 적고자 합니다. 되도록 원문은 해당 사이트에 가서 보시고, 뒷 이야기는 브런치에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구독해주시는 분과 풍성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직장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가를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직장을 단순히 조직 그 이상의 가치를 두고 일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것과 운 좋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이가 한 조직에서 근무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만나본 90% 이상의 사람들은 직장은 직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아래와 같이 생각하며 살고 그 이상의 삶의 가치를 투영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첫 번째, 직장은 스스로와 양립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본의 아니게 지금 직장에 가게 된 사람이 대다수이고,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직장이기에 출근 때부터 늘 퇴근을 목놓아 기다린다. 그러다가 일에 몰입하는 몇몇의 고비를 넘어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고 만다. 그리고 다음 날 같은 하루를 반복하게 된다.


두 번째, 직장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 그 이상의 가치를 쉽게 인정하기 어렵다. 아니 그러기 싫다. 마치 지금 다니는 직장의 보스에게 마치 굴복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형식상 월급을 주주는 것은 직장이지만 마치 리더가 나에게 매월 주는 용돈 같은 개념이다. 물론 그 용돈이 아무리 많아도 늘 나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러기에 난 늘 착취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조직에 불만을 품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조직으로 옮기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세 번째, 직장 내 나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생활 하는 이들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녀)가 상사일 경우에는 더더욱 버티기 어렵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언제나 직장 상사는 시일이 지나면 무기력, 무능력, 무감각한 존재라고 느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렇게 비춰질 수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누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 보다, 내가 보는 관점이 더 중요하고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아집에 빠지거나, 고집불통이 된다.


(본문에서 계속...)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 
[어떻게 관점을 바꿀 수 있을까]
과연, 이렇게 일원화시켜서 판단할 수 있을까

변화를 좋아하는 이는 없다. 인간은 본래 보수적인 존재이고, 아무리 진보적이라고 해도 자신이 가진 관념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의 변화를 두 손 벌려서 환영하는 이는 40년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보질 못했다. 모두들 자신에게 있을지 모를 피해로 부터 피하거나, 변화 자체를 부정하면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자신과 주변 이들에게 정착시켜 나갔다.


그저 자신이 하던데로 계속 하는 것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방식대로 반복되는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애매하다. 간혹 새로운 것은 좋고, 받아들이자니 기존에 내가 했던 것들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기도 한다. 기왕이면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고 싶지만, 그런 답을 내가 내린적이 한번도 없기에 덜컥 겁부터 난다. 



|변화의 주도권은 '나'로 부터

|변화 주도의 동기부여는 환경 조성에 의해


우리는 선택을 하면서 인생을 완성해나간다.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선택의 합이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단하고 쉬운 선택들이 대부분인 것이 인생이지만, 그 쉬운 선택 가운데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는 선택도 있다. 이런 선택은 선택하기 이전 부터 그 선택을 위해 수많은 선택을 요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들에게는 유일한 두 가지, 결혼 그리고 직업(커리어)이다. 


두 가지 모두 수년의 세월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으로 결혼은 이제 '한다' 혹은 '하지 않는다'의 선택에서 '꼭 해야 한다' 혹은 '꼭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적당한 사람, 시기, 상황에 따라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등으로 나누어 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꼭 해야 한다라고 믿었던 것이 결코 꼭 하지 않는 것이 되었고, 어느덧 비주류라고 믿었던 선택을 존중하기에 이르렀다.


직업(Career)도 마찬가지다. 직장이 곧 내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세대로 부터, 직장은 필요에 의해 옮길 수 있는 세대로, 다시 꼭 (괜찮은)일을 하지 않고서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부터 Career에도 다양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미묘하게 실감하는 중이다. 


사장은 늘 '내 일처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지만, 어떻게 사장 말고 사장처럼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것인가... 어차피 말도 안되는 일이고, 앞으로 절대 바라기 어려운 부분이다. 만약 원한다면, 직원을 존중하고, 그를 철저히 믿고 그들의 성장에 맞추어 조직의 성장 방향과 단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이렇게 조직을 운영하는 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변화는 주도권을 쥐고 움직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더라도,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말을 물가에 데려다 놓을 수 있지만, 물을 먹이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라는 속담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약 근본적인 변화, 외부 환경의 변화로 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스스로 변화를 해야 한다고 하면 그때 변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동기부여는 변화하고 싶은 상태를 유발하기 위한 '환경 조성'으로 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변화하고 싶다면, 우선 환경 조성을 다시 해야한다. 


직장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직장이라는 환경의 범주부터 새롭게 정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변화시키고 싶은 상태에 따른 주요 요인을 살펴보고, 그 중에 통제 가능한 것을 최대한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성장은 변화 혹은 변화로 부터 적응하기 위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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