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일자리의 5가지 조건과 돌파구
당장의 '안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일말의 의심 없이 대기업, 공기업 등 안정적(?)으로 보이는 직장으로 돌진하는 이들을 보면, 한 편으로는 공감할 수 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씁쓸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안전한 일자리는 존재할까?"에 대한 물음이다. 이 질문에 근본적인 답을 하려면, 안전한 직장과 일자리는 어떻게 다른지, 좋은 회사는 있는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필요했다.
좋은 일자리는 없다
나에게 맞는 직장부터 찾아야 한다
「좋은 일자리는 있을까 or 좋은 회사는 있을까」는 얼핏 같은 의미의 질문 같다. 하지만, 다른 걸 지칭하고 있다. ① "좋은 회사는 있을까"는 누구의 관점에서 평가를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대표, 직원, 고객, 관계자, 파트너, 주주 등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② "좋은 일자리는 있을까"는 오롯이 (예비) 직원을 향하고 있다. 직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좋은 회사의 기준 그리고 좋은 일자리는 직원 이외의 다른 이들에게는 철저히 다른 이야기이다.
부정적일 수 있지만, '좋은 일자리는 없다'라고 보는 입장이다. 오직 나한테 맞는 회사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좋은 회사가 없다」고 한 것은 비즈니스를 연애에 비유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이성 교제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처럼,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닮아 있거나, 오래도록 다양한 경험을 함께 나누며 점차 닮아 가고 싶은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 각자가 가진 욕구의 관점의 유사성이 조직이 바라는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두에 있는 것이 '리더'이다. 리더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좋은 인력의 유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용도 마케팅적 관점으로 내/외적 가치를 발굴ㆍ발견(Segment)하고, 적합한 대상(Targeting)에게 그러한 가치를 잘 전달(Positioning)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좋은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사람'의 지속적인 유입이 뒷받침이 되어야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 있는데, 우리의 우선순위는 늘 좋은 일자리보다는 사장 또는 고객 등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더욱 우선시되는 회사에 머무른다. '먹고사니즘'의 문제가 늘 우리의 회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데 발목을 잡는다. 좋은 회사(비즈니스)가 순서상 먼저이기에, 수동적으로 좋은 회사를 만들 '누군가(은인)'를 기다린다.
직장인으로서의 답은 명확한 목적과 목표에 의한 적극적이고 전략적 태도로 전환에 있다. 더 이상의 수동적 자세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주어진 환경의 지속적인 변화에 적극적 대응을 하려는 마음가짐과 바꾸는 것이 가능한 유연성을 견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에도 분명 '전략'이 필요하다. 당장의 돈벌이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직장생활'로서 목적을 수정하고, 그에 적합한 당장의 목표들을 세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당 전략이 누구를 짓밟고 남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닌, 타인과 조화롭게 직장생활을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통해 보다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적어도 조직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나만 잘하면 돼"라는 생각보다 나와 연결된 이들이 더욱 일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가치를 보다 확실하게 '상생'이라는 코드로 같이 일하는 이들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복잡하고 어렵다면, 「우리 브랜드를 'OOO이 잘 팔리는 회사'를 만들면...」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려 하고, 고객ㆍ직원 등과의 상생(相生)을 꿈꾸며, 공존(共存)이 회사의 최우선 가치로 만들며, 적정 이윤의 추구로 시장의 성장과 함께 우리 기업의 성장을 함께 꿈꿀 수 있으며, 결국 우리가 몸 담고 있는 Meta-market 속에 시장의 논리를 헤치지 않는 스탠더드 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20세기 리더,
21세기 직원
하지만, 이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지 모른다. 여러 회사를 거치며, 결코 일개 직장인으로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리더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리더 때문에 이직을 결심하기도 하고, 심지어 입사를 꺼리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많은 회사가 있지만, 진짜배기 회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제대로 된 시스템과 인재가 어우러져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으로 결과를 내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임에도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리더가 어떤 시대를 살고,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를 줄 수 있다.
리더가 20세기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세상의 속도와 변화에 둔감하며, 자신의 고집에 맞추어 조직을 만들어간다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과거의 성공이 세기를 초월한 매우 우월한 방법이라 자신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오히려 과거의 뜻하지 않은 영광의 산물일 수 있음에도, 과거 영광에 사로잡혀 계속 자신의 방법만 고수하는 망령에 불과하다.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제 막 사회에 취업 또는 창업으로 진출하는 이들은 20세기(?) 세상을 극히 적게 경험했거나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이다. 그런 이들에게 20세기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꼰대(?)처럼 굴게 되면 아무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채용 방식부터 업무 방식까지, 한창 일하게 될 세대에 맞추어 유연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대부분 기업들이 이를 소홀히 하고 있다. 시장과 고객, 21세기 직원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변화해야 할 20세기 리더들은 겉모양만 21세기에 맞추어 멋있게 변했지 생각은 아직도 제조 및 관련 산업이 주도하던 20세기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나타나는 조직 내 다양한 갈등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둔감한 겉만 21세기 리더는 20세기 방식으로 21세기 직원들을 끊임없이 명령으로 자행한다. 사실, 21세기 직원이 생각하는 '권위'는 누군가로부터 일방적 지시와 명령을 듣고 실행하는 것이 아닌 이해와 설득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에도, 각종 핑계를 대면서 극렬한 반대를 한다. 그게 쌓이면서 성과 저하 또는 조기 퇴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각종 커뮤니티와 사이트를 통해 소문이 퍼지고, 아무리 탄탄하고 좋은 회사라고 해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확산된 네거티브로 인해 좋은 인재가 입사 지원을 주저하게 된다. 결국, 좋은 인재 유입의 경로가 막히고, 나아가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수도 있다.
제도는 문화를 앞서갈 수 없다
<단순 제도 교체는 20세기 방식>
확실한 것은 "좋은 일자리는 좋은 조직 문화"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최초 비즈니스가 만들어지고, 회사가 성장 및 발전하며 수많은 사람(고객 또는 직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과의 내ㆍ외적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많은 인력이 조직에 In & Out 하면서 '조직 문화'를 형성합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리더 또는 대표'가 있고 그들의 말과 행동이 곧 회사의 모든 부분을 대변한다. 수많은 세월 동안 일을 했던 방식, 대화, 회식, 회의 등의 다양한 회합(會合)으로 보이지 않는 '의사 결정 기준 및 일하는 방식'이 생기는 것이다. 그게 곧 조직 문화이다. 그래서 쉽게 바뀌기도 어렵고, 설사 제도적으로 바꾸려고 해도 언제든 과거 문화의 잔재는 있을 수 있다.
조직(Organization)을 사람(Human)에 비유, 하나의 유기체로 해석하게 되면서, 조직 문화도 뚜렷한 계기(Motivation) 없이는 바꾸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각종 호칭 및 직제 및 구조 개편 등으로 조직에 적합한 문화로 전환하려고, 제도를 활용하고 있지만, 그 한계를 인정하고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이다. 물론 잘 활용하면 조직의 성과와 직결되며 나아가 훌륭한 시스템 속에서 우리 조직에 적합한 조직원을 만드는 것 또한 가능하겠지만, 단순 제도 개편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회사를「소유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20세기 리더는 자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문화까지도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설령 법인이고, 다른 주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비슷하다. 한국사회 속 수십 년 동안 정경유착과 압축된 고속성장도 뜯어보면, '지들끼리'의 보이지 않는 거래로 나타난 결과에 가깝다. 과거의 성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에, 과거 성공 방법의 반복으로 더 큰 성공을 꿈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리더가 있다. 그래서 '나(리더)를 위한 길'이 '회사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구멍가게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혼자서 모든 걸 다하는 1인 기업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구성원 전체가 함께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체'라면, 함께 일하는 이들의 생각을 무시할 수 없다. 구성원의 정체성 합(合)이 곧 기업의 커다란 맥락을 함께하는 철학과 문화로 나타나고, 고객을 맞이하는 여러 접점과 함께 '제품 및 서비스'로 표현되는 것이다. '도전 또는 창의'라는 핵심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수 년째 변화 없이 움직이는 조직이 있다면, 도전과 창의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나아가 조직의 리더가 고객 또는 직원을 대하는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도를 만든다. 하지만, 원칙, 범주, 체계도 없는 제도는 오히려 조직을 지배하려는 리더십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설령 리더가 제도의 출발점이라 해도, 조직 내 대부분 구성원과의 충분한 상의, 이해, 동의 없이는 원하는 수준만큼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제대로 된 조직문화는 충분한 신뢰관계의 구축 과정 속에, 여러 해를 거쳐 만들어진 비즈니스상 문화적 정체성은 조직을 거쳐간 개인의 정체성과의 결합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ㆍ생존 기업을 탄생시켰고, 이들은 자신들을 대표하는 문화를 만들면서 자신들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20세기형 좋은 일자리는
21세기에 환영받지 못한다
그래서 기업을 좋은 기업 또는 나쁜 기업(Good vs Bad)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객관성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오히려 지금은 21세기형 일자리가 필요하다. 결코, 자율 출퇴근제, 4.5일제, 파격적 대우 등 특정 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시대마다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던 미모가 변했듯이, 과거 20세기에 최고의 조건이라고 이야기했던 것들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 개인이 조직을 바라보는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
20세기에 좋은 일자리는 개인에게 정신적 성장 경제적 부흥을 가져다주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신의 직장 三大將은 (최고의 연봉), (조직의 명성), (정년 보장)이었다. 이 기준은 현재까지도 유효한 것처럼 오도되어, 많은 이들이 이 기준으로 직장을 선택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미 수년 전에 모두 무너졌다. 몇몇 대기업 속 극히 일부 인원에게 제공되는 혜택이지, 조직 내 모든 인원이 누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될 것 같거나 될 수 있다고 믿고, 심지어 우리 부모님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 지표는 조직에서 제공한 단순한 수익성과 안정성에 기초한 지표이다. 온전히 조직의 목적과 목표, 성과 등을 한 사람의 개인이 책임질 수 없기에 결코 나만 잘한다고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에 중요해진 성장 가능성, 직무적 가치의 지속성, 은퇴 이후의 생활 보장은 결코 조직에서 책임져 줄 수 없다. 이는 분명 '조직의 몫'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의 몫'으로, 조직 안에서 해당 기회를 찾아야 한다.
21세기에도 유효한 일부 20세기 신의 직장에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또한 극소수의 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이다. 대부분 정년도 채우지 못하고, 충분한 성장기회도 갖지 못하고, 쓰다 버린 껌처럼 여겨져, 충분한 보상(이라 부르고, 희망퇴직 위로+퇴직금)을 받는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퇴직을 종용한다. 이렇게 아낀 비용으로 더 값싸고 가치 있는 Fresh Men을 둘 또는 셋 이상 고용한다.
20세기 리더에게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도 사용했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주니어 시절, 계속 누군가 대체되는 것을 목격하고, 소위 물갈이를 통해 조직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으며, 경쟁에서 승리했는지 확인했다.
단지 위와 같은 방법을 더 이상 통하지 않을지 모르는 21세기 New Normal 세대에게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효율성 극대화라는 혁신의 방향으로 비용절감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의 정리'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꼭 필요한 이들을 제외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과감히 버리는 방식은 "大를 위해 小를 희생해야 한다"는 조직의 논리에 개인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논리로 밖에 이해될 수 없다.
하지만, '21세기형 일자리'를 꿈꾸는 이들에게 위와 같은 방식은 점차 통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조직을 찾는 사람들의 눈이 다른 쪽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 안에서 자신만의 생존력을 길러 크기에 상관없는 'My Business'를 꿈꾸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20세기 지표에 사로잡혀 능력(사실은 불필요한 거대 스펙만 가진)만 믿고 입사하려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같은 인력에 속아 잔뜩 채용한 조직은 제대로 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개인의 보이는 능력만 믿고, 개인주의적 문화와 방법은 「개인 성과는 높지만 조직 성과는 아주 바닥을 치는 기이한 조직」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21세기 환영받는 일자리
<믿거나 말거나>
아래의 5가지 내용은 20세기에 결코 주목받지 못한 조건이었다. 오히려 연봉과 직업적 안정성에 밀려 순위가 뒤로 밀려있었다. 하지만, 경제 및 사회의 불확실성 가중이 불러온 직업적 불완전성은 평생직장을 사리지게 만들었다. 결국, "우리가 더 괜찮은 인재를 키워 더 괜찮은 회사에 보냈다"는 것이 인사상 경쟁력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좋은 회사가 아니라, 착한 회사 또는 괜찮은 회사가 되기 위해, '기능적 측면(눈에 보이는 조건 - 연봉 및 복리후생 등)'과 더불어 조직문화(OC) 관련된 내용 또한 함께 갖추어야 한다.
먼저 꼽고 싶은 것이 '직원의 성장'에 조직이 얼마나 투자를 하는가 이다. 사람은 보통 '일'을 통해 '일하는 법'을 배운다. 새로운 일들과 함께 새로운 날을 하루하루 맞이하면서, 일을 해내는 '노하우'를 얻게 된다. 그렇게 '숙련'되면서, 현재 일 보다 수준 높은 일을 하게 되고, 직급도 올라가고, 때론 직책도 갖게 되어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도 주어진다.
직원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① 새로운 일을 할 기회와 함께 그에 어울리는 적절한 권한을 주는 것 ② 그 일을 하기 위한 충분한 내ㆍ외부 트레이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실, 두 가지 모두를 제공하는 기업은 흔하지 않다. 대부분 키워놨다가 경쟁사 또는 타사로 이직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리더가 가진 생각 방향이 "개인의 노하우는 회사에 제대로 쌓이지 않는다"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 퍼포먼스는 직원의 실력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적극 추진이 필요하다. 직원 성장이 곧 조직 성과의 성장이라고 믿고,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더 많은 인재들이 우리 기업으로 몰려들게 만들고, 이 과정 속에서 정돈된 과정을 거치도록 하며, 좋은 회사를 넘어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모든 기업이 겪을 만한 '구인난'으로부터 탈출시켜줄 중요한 Key가 될 수도 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너무 많으면 그에 비례한 일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높은 연봉에 비례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비슷하거나 그 이하면 현재 조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연봉을 쫓아 계속 점프하듯 이직하는데, 그때마다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연봉을 받게 되고, 결국 연봉 절벽에 가로막힐 수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연봉 절벽'에 부딪히지 않는 것이다.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도 좋지만, 그게 꼭 내가 받게 될 '급여'일 이유는 없다. 오히려 내 성장을 위한 '기회'일 수도, 맡기도 어려운 특정 '임무' 또는 '직책' 일수도 있다. 만약, 주니어 또는 조금 낮은 시니어 레벨이라면 이를 담보로 한 이동이 더 먼 미래를 위한 투자적 성격의 선택일 수 있다.
자신의 노고가 급여를 통해 100% 보상될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만약 지금 받는 급여가 부족하다 느껴지면, 현재 받고 있는 여러 혜택에 주목해 봐야 한다. 조직에서 인정받는 부분은 무엇이고, 인정 이상으로 주변 및 업계에서 충분한 신망을 얻고 있는지, 어울리는 기회가 어떻게 나에게 주어지는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 분석해봐야 한다.
세상이 각박해진다고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목적 중 하나는 '친구' 또는 '동지'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들과 함께 뜻을 나누고, 함께 나아가며 여러 교감을 나누고, 그 안에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은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혜택이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더불어 함께 일하는 문화'가 없다고 하면 해당 기업은 오래갈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언제든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드러나지 않는 움직임으로 기업 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기업이 Station이 되는 세상이지만,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면, 운이 좋아 명맥을 유지할 수는 있어도 절대 성장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곧 망한다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조직에 동지애(愛)가 있어야 21세기형 일자리라 볼 수 있다. 불확실함이 더욱 가중되는 저성장 시대에 조직 안에서만큼은 서로를 감싸주고, 그들의 목적에 맞게 함께 영위하는 일에 대해 응원해주고, 힘을 실어주는 문화만으로도 조직은 충분히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뜻함도 조직 고유의 문화, 일처리 방식 및 방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만약, 정말 가족 같은 조직이라면 모르지만, 만약 내로남불의 가'족'같은 기업이 많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회사와 집은 심리적, 물리적으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것이 좋다. 적당한 거리 유지로 일하는 긴장감을 가질 수 있고, 출퇴근 길이 피곤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후배가 회사 사무실로부터 50m 정도의 거리에 집을 얻었다가 Team House로 전락하는 것을 보고, 회사와 집의 거리는 적당히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또한 내가 맡은 일 그리고 함께 하는 동료들과 심리적 거리도 일정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가까워져도 하는 일과 동료, 조직에 대한 객관성을 잃어버릴 수 있고, 무엇보다 만약 평가가 걸려있다면, 평가의 공정성 또한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래도록 직장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직장 상사 또는 조직에 과도하게 충성하는 것이 때론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다른 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또한 직장인으로서 '처세'에 필요한 덕목이고, 나아가 조직 내부에 '거리 유지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말처럼 언젠가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을지 늘 생각해봐야 한다. 꼭 헤어져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직업은 와이프(남편) 같은 존재이고, 직장은 애인 같은 존재라고들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떠난다고 할 때 'Cool' 하게 보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곳에서 충분한 경험을 했고, 성장을 했으며, 지금 보다 높은 수준의 일을 하러 떠나는 이들에게 축복을 빌어줄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지금은 이와 같은 회사가 많아지는 것 같다. 여전히 동종 업계 취업 금지 조약 등이 있지만, 유명무실해지기도, 비즈니스에 위기가 초래할 정도가 아니라면 강조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좋은 직장상사와 동료를 만나는 것도 복이다. 그러기 이전에 내 곁을 떠나는 동료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자세를 나부터 갖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존중받아야 할 각자의 선택이고, 함께 있는 동안에 같은 목적과 목표를 좇아서 일을 했던 동료일 뿐이기 때문이다.
P.S 구인난에 처한 대표님들께
국내 기업 대부분은 21세기 기술을 20세기 사고방식으로 관리하는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성장은 멈췄고, 일본의 뒤를 이은 저성장의 굴레로 들어가게 되었다. 전 세계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급속화한 노령화가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를 불러왔다. 앞으로 닥쳐 올 인구절벽은 곧 구인난과 구직난으로 나타날 것이다.
현재 이런 추세는 거시적 인구감소 현상에 국가적 리더십이 관심이 없음을, 사람들의 사고가 여전히 20세기에 머무르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위기라고는 하지만, 위기라고 믿고 싶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제는 그런 생각으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20세기를 살았던 이들, 앞으로 21세기를 살아갈 이들 간의 충분한 교감이 필요하다. 이제 막 조직에 들어갈 이들은 21세기에 익숙한 이들이다. 누가 누구를 이해하려고 해야 할까. 이미 답은 나와있다. 둘 사이의 충돌이 거대한 사회적 문제로 까지 번지고, 누가 더 피해를 볼지를 보면, 누가 더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소위 구인난 또는 구직난이 사회적 문제가 된 것도 이런 부분에서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21세기 모두가 바라는 괜찮은 일자리는 결코 최신식 PC 또는 Mobile, 화려한 인테리어의 사무실 등의 기능 및 도구적 접근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보다 인간적인 환경에서 개인의 적절한 성장을 존중하고, 직원 및 고객과 상생하며, 성숙된 합리적 기업문화로 성장형 보상 등이 조건이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20세기의 회사를 21세기 일자리가 대체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태어날 때부터 종이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먼저 쥐고, 살아가게 될 New Normal 세대에게 종이책을 만들고 취급하던 방식을 강요하고, 당위성 없는 명령만 자행한다면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이 가진 섬세함, 디테일 등을 최대한 현재 몸 담고 있는 비즈니스 안에 투영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신만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