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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Aug 16. 2018

일, 시간에 갇히다

일하는 시간과 일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가치는 비례하는가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이 2017년을 강타했고, 대한민국 대부분이 일하는 시간(working time)이 너무 많다는 것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2시간 제약(Limit)'이 나타나 직장인의 수입 감소가 곧 내수시장 침체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타났고, 논란거리가 됐다. 과연 진실은 무엇이며, 왜 우리는 일하는 시간에 일의 가치가 비례하다고 생각하는가 


"일(역할과 책임)을 통해 주어진 목표 및 목적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까"에 집중해야 하지만, 모두가 정해진 시간을 향해 달리고, 심지어 이를 가지고 규제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고 있다. 언제쯤 일하는 시간에 비례하여 누군가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테일러 때문이 아닐까. 



Taylor's Motion Study의 함정
컨베이어 벨트 단계별 부품의 시간대비 생산 개수로 노동 효율성을 측정했다

최초 노동 효율성 평가는 테일러의 Motion Study로부터 시작됐다. 정해진 구간과 시간 속의 반복된 작업의 효율성이 곧 노동의 효율성과 같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덜 발달된 기계 관련 기술의 빈틈을 사람이 메워야 했고, 이러한 빈틈을 완벽하게 메우기 위해서 동작까지도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 


대량생산체제, 그 안에서는 무엇보다 많이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공평하게 제시된 시간이 야속했다. 기계에 대한 연구개발도 함께 뒤따랐지만, 사람들의 동작을 연구하여 각 단계별로 필요한 동작들을 매뉴얼화하면 충분히 생산성 개선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문제는 얼마나 기계와 비슷하게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에 달려있었다. 그래서 컨베이어 벨트가 설치되고, 너트와 볼트 하나 혹은 두 개를 조이는 일로서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각각의 작업은 간단해졌고, 그 간단한 작업은 다음 작업을 잇기 위한 최소한의 동작으로 이루어지게 설계되었다. 


완성품 자체가 복잡할수록, 고난도의 기술이 들어갈수록 컨베이어 벨트는 길어졌고, 그 길어진 벨트에 각 부분을 담당하는 이들은 전후 단계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컨베이어 벨트의 저주, 결국 내 존재는 그다음 단계의 '보조적인 역할'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기보다는 그 자리에 없으면 오히려 노동의 가치 중 효과성 부문이 하락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산 물품 혹은 단계에 따라 가용한 부가가치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노동(력)을 평가하는 기준도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이 만들 수 있는 이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다. 이른바 숙련된 노동자의 선별 기준이 곧 시간 대비 노동 생산성(효율성) 평가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21세기에도 유효한 Taylorism
이렇게 하면 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니

문제는 노동 효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평가 패러다임이 21세기의 지금까지도 업종과 업태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테일러의 함정'이다. 생산직 근로자를 포함 지식근로자도 예외가 없다. 심지어 지식근로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일일 8시간, 주간 40시간 이상의 근무를 해야만 했다. 


문제는 왜 누가 어떻게 그만큼 일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이가 없다. 그저 누가 더 많이 일하는 가에 따라 그들의 근무 평가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 아닌 사실만을 고지할 뿐이다. 지금도 근무 태도의 평가 기준에는 근무시간에 의한 평가가 유효하다. 누가 더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가에 따라 평가하며, 무려 이 기준은 100년 전 테일러로부터 만들어졌다. 이른바 테일러의 재림이다. 


심지어 몇 해전 모기업에서 메신저 자리비움에 경고를 주기 위해 ERP에 사이렌 기능을 두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만큼 기업이 통제하고 싶은 근로자의 참모습은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 그 사람이 있는 것, 그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출근 시간 엄수'에 목을 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해당 법칙에는 분명 오류는 있다. 테일러 법칙을 현대 경영적 개념과 맞물려 생각하면 「오래 일하면 노동 생산성이 올라가서, 우리 비즈니스가 더욱 성장한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이는 그 어디서도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이며, 다품종 다량(맞춤) 생산시대가 된 지금은 더욱이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분명 열심히 해서 많고 다양한 가치를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열심히'에 대한 의미가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있어라"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성과를 측정하고, 이를 관리하는 차원의 접근이 인간의 책임을 동반한 자율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로지 '통제(Control)'의 개념만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일하는 시간보다,
일을 통해 발생 가능한 가치


Taylorism 자체가 문제가 있지는 않다. 다만 모든 근로의 형태 및 방법에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것이 이미 의미가 없어진 시대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쩔 수 없이 설정된 기본적 기준인 것은 이해하지만, 최소 임금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요소라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단순하게 시간 대비 노동의 가치를 산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싶다. 


결국, 문제는 일하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일하는 시간 대비 발생 가능한 가치로 보는 관점이 더욱 합당하다. 우리의 일은 특정 시간에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충분한 기능을 하거나, 성과를 만든다고 보기 힘들다. 열심히 하는가 하지 않는가는 볼 수 있지만, 그게 정말 효과적인가 아닌가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조직에서는 개개인의 일을 명확하게 가이드(뚜렷한 R&R)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일을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두 방향(① Output의 극대화 또는 ② Output 대비 Input의 최소화)의 가치 중에 우리가 현재 집중할 것이 무엇인지도 제시해줘야 한다. 그 몫은 아마도 리더의 책임일 것이다. 


더불어 (지식) 근로자는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 그 결과에 필요한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을 통해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충분히 합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변화되는 경영 환경에서 스스로가 발생 가능한 부가가치가 무엇이며, 맡고 있는 역할 및 책임 대비 적절한 가치(충분한 교환가치)가 얼마의 시간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가늠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해서는 어렵다. 그 일을 통해 발생 가능한 직접ㆍ간접의 여러 결과 및 효과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방법론의 시험과 그중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효과성), 몇 번의 반복된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원하는 결과를 도출 및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결국 내 일의 결과가 비즈니스 결과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점차 깨닫게 된다. 


이는 미래의 우리 노동 형태를 봤을 때 더욱 합리적이다. 특히 지식근로자(세상의 모든 근로자는 지식근로자입니다_피터 드러커)라면 마찬가지다. 스스로가 특정 기능을 때우듯 일하기보다는, 조직이 제공하는 시스템 속에서 여러 구간에서 오가는 여러 영향이 교차된 연결 고리(Networker)로서 다양한 시너지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꼭 정해진 시간에 작동하기보다는 내 다음 연결 관계가 막히지 않도록, 유려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하며, 상대가 원하는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이면 충분하다. 


또한 조직은 비즈니스 성과 및 지속가능 경영의 패러다임과 연결 지어 노동 효율성 대비 효과성을 제대로 측정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최소한의 역할과 책임에 근거하여 개인 또는 팀으로서 발생시킬 최소한의 가치(원가 및 가격 이상)를 조직에 적합한 최소한의 기준으로 변환이 하는 것이다.  




최근 많은 진보적 성향의 기업들이 정부의 정책을 무시(?)하듯이, 주 5일 미만의 근로 시간(40시간 미만) 및 자율 근무제(혹은 유연 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곧 노동의 시간 대비 비즈니스의 가치가 꼭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리더들의 선택이다. 

여전히 뉴스는 '노동의 시간'에 주목하여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에만 주목하고 있다

물론 이런 선입견(?)을 한 번에 바꾸거나, 인위적으로 제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시간 대비 가용한 생산성이기보다는, 고객에게 제대로 도달 가능한 Value Network를 어떻게 다듬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망하는 이유는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시장의 흐름을 놓치고, 고객의 소리를 귀담아듣지 않고, 직원에게 집중하지 못하거나, 중심이 없는 무분별한 시스템 부분 최적화 등이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일하는 시간이 모자라서 망하는 기업을 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앉아 있는 이가 공부를 잘하기보다 더 효과적으로 공부하는가에 달린 것이다. 이는 우리가 매일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누가 더 얼마나 몰입하는가, 어떤 생각과 관점을 통해 기대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가,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전 사후 준비 활동 및 직간접적 배경이 될만한 다양한 경험을 했는가에 달려있다. 실제 입사할 때도 자신이 했던 일의 '시간 총량' 보다는 우리가 했던 일의 본질을 적어내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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