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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Dec 19. 2018

일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최초에 "왜 그 일을 택했는지 혹은 지금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지면 관계상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어, 담지 못한 이야기 등을 추가로 하거나, 그 이상의 생각 등을 적고자 합니다. 되도록 원문은 해당 사이트에 가서 보시고, 뒷 이야기는 브런치에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구독해주시는 분들과 풍성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방송인 서장훈의 유행어다. 방송 중에 흐름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함께 출연하는 누군가가 요즘 유행하는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일 때마다 내뱉는다. 현재 어떤 테마와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고, 거기에 부합하는 이야기만 하라는 말이다. 그만큼 흐름은 의미를 대변해준다.


일도 마찬가지다. 분명 처음 그 일을 시작할 때는 무엇인지 모를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뚜렷한 정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해도 그 소중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점차 맡은 일을 해나가면서 조직 또는 상사가 제시하는 목적 및 목표를 달성하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를 통해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점차 깊어지고 동시에 확장된다. 그러다가 문득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왜 그러는 것일까.


이는 대부분 우리가 하는 일을 제대로 구분해 정의를 내리지 못하면서, 더 나아가 스스로의 성취감을 위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서부터 Burn-Out의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 지금 하는 일이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임에도 ‘일이 변한 것인지, 내가 변한 것인지’ 좀처럼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결국에 일과 나를 끊임없이 분리하려는 모습을 업무를 하면서 보여준다. 물론 그 피해는 나를 포함한 동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며 동시에 조직에도 때때로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필자는 이직스쿨을 운영하면서 만난 상담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증상은 일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인데, 왜 그랬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만약 영영 찾지 못한다면 어떤 일을 해야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질문의 흐름’이다.


우리는 일의 의미를 왜 잃어버릴까. 대표적으로 첫째, 우리가 너무 일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많다. 일은 Career, Job, Task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 우리가 매일같이 하고 있는 것은 Task 단위의 작은 일들이다. 당연히 이런 활동이 모여 Job 또는 Career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Task 단위로 일을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면서, 일 자체가 너무 작게 느껴진다. 결국 일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그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른바 일을 통해 존재감을 갖게 되던 내가 일 때문에 자존감을 갉아먹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심화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 가늠하는 방법조차, 매일같이 하는 일(Task)에 묻혀 잊게 된다.


(본문에서 계속)



덧붙이는 글
'일'도 달라졌고, '나'도 달라졌다
<변화의 준비는 평소에>

조직도 개인도 변화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못할까

세상은 변한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만고 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일도, 그 일을 하는 자기 스스로도, 함께 일하는 동료도, 현재 다니는 직장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마치 그 일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그 일에 대한 충분한 실력이 쌓였다고 착각한다. 일은 변하지 않고, 그 일을 오래 했으니 '나는 숙련가'이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일은 결코 그렇지 않다. 특정 기업이 연결된 시장, 이들과 연결된 복잡다단한 구조 속에서 기업 내 직무들은 미묘하게 변했다. 만드는 것은 매한가지로 비슷할지 모르지만, 만드는 방식도 이를 대한 고객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시장 속에서 과연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더욱 좋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모르는 이들은 참으로 딱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우선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세상이 변화하고, 그 세상의 어떤 부분에 연결된 곳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은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의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변화에 편승하여 나도 함께 변하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수 있기에 최소한으로 변할 수 있는 준비는 늘 필요한 것이다.


앞선 칼럼에서 이를 자세하게 다루었지만, 몇 마디 첨언이 필요하여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가 필요하다. 그 객관화는 현재 삶의 모습이 내 마음에 얼마나 드는지 들지 않는지의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우선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다. 지금 하는 일을 시작할 때, 바랬던 스스로에 대한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둘째, 과거의 나와의 비교로부터 보완점을 도출한다. 과연 그 최초의 마음으로부터 무엇을 이루었고, 이루지 못했는지 정리해보고 앞으로 무엇을 하지 않고, 꼭 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본다. 실천은 그렇게 시작된다. 


셋째,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세상에 단 번에 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이다. 그 외의 것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여유를 줘야 한다. 만약 스스로에게 조이기를 시전 하고 싶다면, 오직 방향을 잃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서서히 습관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넷째, 잘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한다. 다시 한번 방향(목적)을 확정했다면, 그에 대한 적합한 단계(목표)가 필요하다. 그 단계를 작게 쪼개서 조금씩 달성할 수 있는 모습을 스스로에게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다섯째, 잘했다면 상을, 못했다면 벌을 줘야 한다. 내가 남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대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수시로 점검했던 결과는 곧 평가과 다르지 않다. 평가 이후에는 적절한 보상을 통해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실어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과거보다 나은 삶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굳이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바보 같은 행위는 가장 하지 말아야 하는 행위이다. 비교는 남이 아닌 과거의 나와하는 것이다. 어쩌면 남과 나를 비교하는 가장 바보 같은 일부터 멈추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은 변하고, 나도 변하고, 일을 하는 동안에 발생하는 다양한 화학작용은 매번 같은 일이지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이를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전과 유사한 결과 또는 효과를 내는 것이 진정한 프로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나와 일 사이에 연결된 복잡하고 다양한 신경망 하나하나를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며, 동시에 일의 전후관계와 맥락 파악으로 자신의 장악으로 일을 주도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의 크기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만약 그 행복의 크기를 넓히거나 깊이 있게 가져가고 싶다면, 우선 일을 하는 나를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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