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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Mar 11. 2019

겉치레, 속 단장

'아무나'가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

지면 관계상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어, 담지 못한 이야기 등을 추가로 하거나, 그 이상의 생각 등을 적고자 합니다. 되도록 원문은 해당 사이트에 가서 보시고, 뒷 이야기는 브런치에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구독해주시는 분들과 풍성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얼마나 더 해야 할까요?” 코칭을 받던 사람에게 필자는 머리를 ‘쾅’ 하고 얻어맞은 것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미 몇 개월에 걸쳐서 코칭을 받고 있었고, 나름의 성과를 지닌 상태에서 지원 가능한 회사를 추려서 실질적인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 생각할 때는 괜찮은 성장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시그널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잘 모르겠고, 빨리 납득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 중단할 것 같다는 솔직한 말도 덧붙였다.


당연히 의뢰인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라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그보다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저지른 과오가 떠올랐다. 의뢰인과 필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성장’의 관점을 충분히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이에 대한 협의 없이 무작정 진행한 것이 아닐지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것이 필요했다.


한참 동안 각자가 바라는 성장의 모습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성장을 위한 방향성이나 철학에 대해 충분히 공감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고, 함께 내린 결론은 겉치레와 속 단장 중 무엇이 먼저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눈에 띄는 결과를 얻어야만 그동안 해왔던 노력이 헛되지 않았고 보상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 직장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그 생존을 위해 직장을 옮기는 것도,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전부’가 아닌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적어도 단순하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지금 하는 여러 노력을 모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그렇다면 더욱 쉬운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생을 하는 것이 모두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계속...)



덧붙이고 싶은 글
나는 '아무나'가 되기 싫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스스로를 지우고, 감춰가며 살고 싶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들 대부분은 '아무나'가 되기 싫어한다.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길 원하고, 이를 의해 노력한다. 자신이 하던 일에서 전문성을 쌓기 위한 노력과, 주변으로 부터 충분한 인정, 그에 따른 보상 등을 통해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게 보통의 우리가 목표로 한 각자의 삶의 목표상 공통점이다.


그런데, 멀리 떨어져서 보면 대부분 one of them에 불과하다. 회사원 등과 같은 몇몇의 평범해 보이는 단어로 스스로를 규정지을 수 있거나, 타인들과 삶의 패턴이 비슷하거나,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이 생김새를 빼면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다면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비교가 주는 쾌감과 불안감


사람들은 대부분 '비교'로부터 쾌감을 느끼고, 여기서 요즘 말로 정신 승리를 추구한다. 비교의 대상보다 내가 나은 점을 이미 기저에 깔고, 이를 통해 스스로의 우월함으로 자기 위안 또는 위로를 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옆집에 누군가와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 성장했음을, 나이가 들어서는 각자 다니고 있는 회사의 네임벨류 또는 현재 받고 있는 연봉 등에 의해 비교를 하고 또는 당한다.


그런데,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점차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알기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조건과 환경, 상황 등이 전부 다른데 과연 비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말이다. 어디든 나보다 센 놈이 있고, 생각지도 못하게 그와의 보이지 않는 승부에서 질 것이 뻔한데 말이다.


그래서 '타인과의 비교'를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일종의 정신 승리의 행위가 '일시적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또 다른 측면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좇는 자와 좇기는 자를 비교할 때, 분명 좇는 자가 더 높은 건강함을 가져야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많이 봤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여러 통제 및 관리 요소에 의해 같은 목표에 의한 결과를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타인과의 비교는 시작부터가 잘못됐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상에서 같은 목표를 향해 뛰던 학창 시절에는 가능했지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성인들의 임의적 비교는 의미 자체가 없다.



그래서 꼭 무엇부터 할 필요가 없다.

그냥 '타인과의 비교'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우리는 같은 그룹도 커뮤니티도

심지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굳이 비교하려면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것이다. 현재 모습이 원하는 미래의 모습에서 과거보다 얼마나 더욱 가깝고도 멀어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글을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쓸 수 있는 것으로, 또는 문장력을 포함한 스스로 평가 가능한 여러 요소를 통해 비교해본다.


최근에 준비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어색하지 않게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지 말이다. 여러 번 연습과 반복을 거쳐서, 사람이 아닌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것이 다소 어색했지만, 이제는 어색함을 넘어서 시선처리 및 말을 하는 톤과 포인트 등을 촬영된 영상을 보고 연습 중이다.


그만큼, 내가 바라는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다음 순서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고, 전문가로 보이는 이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순서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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