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슴의 빛이 반짝이도록

by 타조

검은 수목들이 쌓인 그림자가 꿈을 식혀주는

어둠 속을 그는 즐겨 걸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빛을 향한 타오르는 욕망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 맑은 은빛 별들이 가득한

갠 하늘이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그는 어둠 속을 걸었다>, 헤르만 헤세




문명이 덜 발달한 사회에서 사는 사람의 행복지수가 편리한 문명을 누리는 사람의 행복지수보다 더 높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의아했다. 집에서의 삶으로만 국한해 보더라도 세탁기와 건조기, 로봇 청소기와 식기세척기와 같은 생활 가전부터,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음식배달과 같은 생활적인 요소까지 너무나 편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행복지수가 이런 당연한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의 행복지수보다 낮다는 사실을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말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가?


생존의 영역을 넘어 사회가 복잡해지고 더욱 많은 삶의 요소를 고려해야만 하는 현대인 앞에 수많은 행복의 선택지가 놓여있다. 단지 생존하고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만족할 수 없다.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가 우리 행복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하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행복에 필요한 요소가 점차 늘어난다.


동굴이 아닌 집이 필요해지고, 집의 내부도 아름다워야 하며, 편리한 가전도 있어야 하고, 살고 있는 동네도 만족스러워야 한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 높은 수준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추구한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상황이 이어지면 이내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평범에 이른다. 오히려 평범하다고 느낀 것이 조금이라도 불편해지거나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마치 불행해진 것처럼 여긴다.


더욱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의 기준이라기보다는 다른 존재와의 비교로 이루어진다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빈부의 격차나 삶의 형태를 비교하며 우월한 만족감이나 처절한 패배감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발달한 문명 속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다소 그 행복에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여러 행복 요인 중에서 단연 으뜸은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가슴에 품고 있는 어떤 빛, 어쩌면 일생을 통틀어 빛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존재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행복의 요소들 속에서 정작 중요한 자신의 빛을 발현시키는 삶의 과업을 잊는다. 내면의 빛이 드러나기까지 걸리는 수많은 노력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보다 더 화려하고 그럴듯한 행복의 요소에 시선을 뺏기고 만다. 게다가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는다.


가슴에 불타는 빛의 열망이 자칫 현실적인 삶을 망치거나 잉여인간으로 전락시킬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휩싸인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나조차도 나이가 들어 가슴에 어떤 빛을 품고 지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과연 어린 시절의 열망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럼에도 수시로 빛의 기억을 품고 밤길 산책을 나선다. 어둠 속에서 빛이 드러나기를 고대하며. 하지만 수목들이 드리운 짙은 그림자에 묻혀 빛은 사그라든다. 현실적인 삶 속에서 힘을 잃고 잊힌다. 그런데 눈으로 보지 못한 수목들 위로 넓게 펼쳐진 하늘에는 별빛이 쏟아진다. 현실의 짙은 그늘에 가리어진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빛을 낸다. 이미 현실을 초월하여 가슴의 빛을 밝게 드러낸 존재들로 가득한 하늘은 철저하게 현실에 가려진 채.


그늘이 짙은 숲을 벗어나 누군가의 빛을 보고 공명할 수 있는 삶을 꿈꾼다. 그렇기에 보다 높은 시선으로 세상의 깨달음을 전해주는 선각자를 동경한다. 그 빛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곳까지 움직이고 가슴에 품은 빛을 세상에 드러내보고자 용기를 내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가치이자 스스로의 몫이라고 하겠다.


<헤르만 헤세, 1877-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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