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으로 떠오른 깨달음
그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멜빵바지를 입고 잠바 단추를 잠그고 난 나는, 드디어 모카신 속에 가만히 발을 집어넣었다. 주위는 아직 어둡고 추웠다. 나뭇가지를 뒤흔드는 아침 바람조차 불지 않는 이른 시각이었다.
할아버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산꼭대기까지 데리고 가겠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깨워주겠다'고는 하시지 않았다.
"남자란 아침이 되면 모름지기 제힘으로 일어나야 하는 거야."
할아버지는 조금도 웃지 않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신 후 여러 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셨다. 내 방 벽에 쿵 하고 부딪치기도 하고, 유난스레 큰 소리로 할머니에게 말을 걸기도 하셨다. 사실 나는 그 소리 때문에 눈을 뜬 것이다. 덕분에 한발 먼저 밖으로 나간 나는 개들과 함께 어둠 속에 서서 할아버지를 기다릴 수 있었다.
" 아니, 벌써 나와 있었구나!"
할아버지는 정말 놀랍다는 얼굴로 말했고,
"예, 할아버지."
내 목소리에는 뿌듯한 자랑이 묻어 있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부모를 잃은 체로키 혼혈 소년 '작은 나무'는 정부의 강제 동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산속에서 조부모와 함께 자연 중심의 자립적 삶을 살아간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체로키 전통 지혜(자연과의 조화, 중용, 공동체 정신)를 배우며, 백인 중심 사회의 물질주의와 억압에 저항하는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고아원 수용과 같은 정부 간섭의 시련 속에서 원주민 문화의 순수성과 자유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현대 사회의 국가주의와 개인주의를 에둘러 비판한다. 결국 조부모의 죽음 후 홀로 떠나는 주인공의 여정은 자립과 영적 성숙을 통해 억압적 체제 하에서 인간 본연의 따뜻함을 회복하는 교훈을 남긴다.
산업화로 붐비게 된 도시는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똑같은 모양의 공동주택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학교에서는 숙련된 노동자 양산을 위해 획일화된 교육을 실시한다. 자연을 자유롭게 누비며 자유로운 상상이 가득했던 삶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 책은 어린 시절 자주 올랐던 뒷산에서 땅을 파던 두더지를 본 기억, 미처 발견하지 못한 뱀이 발 앞에서 갑작스럽게 움직여 놀랐던 기억, 가느다란 쇠꼬챙이로 개미집을 파내어 여왕개미를 발견했던 기억 등 자연으로부터 많은 경험을 쌓고 배운 것들을 떠오르게 한다. 또 이웃과 평상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교류하던 마을 공동체의 모습도 떠오른다.
물질적으로 많은 것이 충족된 삶을 살면서 심리적 허전함을 경험하던 시절이 있었고 이 책은 그 시절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받아들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공동체와 인류애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그래서 이 책은 가슴을 울리는 책으로 손꼽는다.
책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저자 포리스트 카터, 본명은 에이사 얼 카터이다. 그는 1925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난 백인 남성이고 1950년대 쿠 클럭스 클랜(KKK) 지도자로 활동하며 인종차별주의를 선동했으나, 본명 활동에 제약이 따르자 나중에는 가명을 사용해 체로키 인디언 혼혈을 사칭하며 소설을 썼다. 심지어 자녀를 조카로 부르며 과거를 부정했다고 한다. 작가의 삶과 정반대의 작품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이 작품을 기점으로 생각의 극적인 반전을 이룬 것일까?
과거 레프 톨스토이처럼 과거의 만행을 반성하며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과거가 너무나도 극단적이고 충격적이었으며 이후에도 과거를 청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의 진정성이 의심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삶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작품이자 깊이 고민하지 않았으면 쓰지 못할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생 후반부는 후회와 반성의 삶을 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우리는 과거의 생각과 말, 행동을 뒤늦게 후회한다. 경험의 부족과 얕은 생각이 부른 당시의 모습을 되돌아보니 후회스러운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관점이 다양해지고 생각이 깊어지면서 과거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는 것이기에 지금의 모습도 다시 훗날에 돌이켜보면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겨두려 한다. 존중과 겸손의 자세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카터의 삶을 통해서 일깨운다.
<에이사 얼 카터, 1925-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