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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다하여

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것을 품고

by 타조

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爲能化

그다음은(하늘의 도를 이루는 지성 다음은)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함이니, 작은 한 부분이라도 능히 정성을 다해야 한다. 정성이 있으면 겉으로 드러나게 되고, 겉으로 드러나면 더욱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이내 환하게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化)된다.(근본적인 변화를 이룬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




시, 그래. 중용 23장은 일정한 운율을 이루고 있어 마치 시처럼 느껴진다. 도덕과 심성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중요성을 강조하고 널리 보급하던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으로 이루어졌다. 그곳에 기록된 깨달음이 시처럼 기록되었다. 현대에 들어서 시가 정형화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형태로 발전하면서 시의 영역은 더욱 확장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아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영감을 주는 고전 중 동양철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사서 오경의 글들이 때론 문학작품처럼 느껴진다. 특히 꾸밈없이 필요한 내용만 담백하게 담은 글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는 미학적인 요소가 없더라도 정신세계를 강타하는 통달의 경지에 대한 감탄과 감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한 부분이라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중용의 문구. 정성이란 온 힘을 다하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다. 항상 큰 목표에 가려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작은 부분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중용의 이야기는 삶의 큰 물줄기를 따르되 목표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여유로운 시선과 태도의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정신없이 달리기를 이어가면 놓치는 아름다운 풍경과 나뭇잎 사이를 통과해 조각난 햇살이 만드는 작은 무늬를, 걸을 때에는 시선에 담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큰 형태를 유지하는 관념이나 물건이라도 작은 부분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부조화의 위화감,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작은 부분에 감사하며,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삶에 풍성함을 더하는 것이 진정한 생의 목표가 아닐까 싶다.


아침 알람을 듣고 눈을 뜨면 방은 아직 어둠에 둘러싸여 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목과 어깨를 가볍게 돌리며 잠을 물리치고 일상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로 하루를 시작한다. 틈틈이 시간이 생겨도 생각을 정리하거나 오로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기와 함께 무언가를 끊임없이 한다. 잠이 드는 순간까지. 절대적으로 고독하거나 생각을 정리할 여유는 없다.


무려 기원전의 학자가 저술한 책에서 놀라움을 발견한다. 나는 이천 년 전 선현의 가르침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식을 남에게 의존하며 손쉽게 찾아 쓰는 세상에서 생각을 발전시키고 다듬는 시간의 절대적 부족으로 오히려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본다. 이런 고민이 고독의 의미를 곱씹는 글쓰기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자사.jpg

<자사, 기원전 48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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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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