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꿰매고, 잇고, 엮고

삶의 바느질

by 타조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게 아니었을까

<바느질>, 박경리




역시 우리나라 작가의 글, 그러니까 같은 문화를 바탕으로 외국 작품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특히 한글 단어들 간의 미세한 어감 차이도 세밀하게 느끼며 작품과 교감할 수 있다. 현재와 멀지 않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통해, 조금 멀게는 부모와 조부모 세대까지 경험 속에서 깊이 이해한다. 특히 섬세한 감정을 지긋한 나이의 경험으로 절제한 듯한 작가의 표현이 좋다.


풍성한 감정이 끓어 넘치는 젊은 시절의 싱그럽고 생동감 넘치는 삶 못지않게 나이가 들어 영글고 원숙한 감정의 삶도 아름답다. 젊은 날의 아름다움이 한낮의 쾌청한 하늘과 밝은 태양이라고 한다면, 중장년의 아름다움은 저녁 무렵 서쪽 하늘로 기우는 태양빛이 구름을 붉게 수놓은 주홍빛의 하늘이 아닐까 싶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두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거울을 바라볼 때마다 푸석해진 피부와 늘어난 주름을 바라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지만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면서도 아쉬움을 동시에 느낀다.


어쩌면 일주일에 글 한 편을 쓰는 일이 박경리의 바느질처럼 인생을 엮는 일인가 싶어 괜스레 비교도 되지 않는 작가와 내 모습의 동질감을 떠올린다.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영향을 끼친 작가와 나의 글은 비교 불가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행위가 흩어졌던 삶의 파편을 모아 꿰매어 잇고 하나의 삶으로 엮어내는 과정이라는 생의 과업으로써의 의미를 부여하는 나 혼자만의 위안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독한 시간을 마련해야 가능한 이런 일, 독서와 사색, 글쓰기. 이런 일들이 내 삶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의 까마득한 불확실함 속에서 등대의 불빛, 또는 밤하늘의 별빛으로 반짝여줄 것이다.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사람들과 빛과 온기를 함께 나누는 삶을 꿈꾼다.


<박경리, 1926-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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