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윤동주
책을 펼치면 가장 처음 마주하는 글, 서문. 서시는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가장 처음 등장하는 시다. 윤동주 자신의 정신세계와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굳건하게 지키려는 노력의 다짐도 담았다.
알다시피 윤동주는 생전에 시집을 출간하지 못했다. 그가 일본에서 옥사한 뒤, 친구 정병욱이 윤동주가 남긴 원고를 지켜냈고 그 원고 속에서 서시는 맨 앞장에 있었다. 그래서 사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만들 때, 시인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선언적 시로 자연스럽게 첫머리에 배치했다고 한다.
민족적 정체성과 인간적 양심이 그의 작품 전반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의 시집 출간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시적 표현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하고 자기성찰적인 시인으로 유명한 그의 높은 기준도 한몫했으리라 짐작한다. 윤동주는 완성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부끄러움 없는 글을 쓰기 위해 꾸준히 시를 고쳐 썼다고 한다.
서시는 원래 다른 제목으로 쓰였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시가 쌓이고 시집 출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면서 작품의 주제와 흐름을 고민하던 그가 창씨개명과 감시에 시달리며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서시를 선택하여 원고 가장 앞에 상징처럼 제시한 것이 아닐까?
비운도 이런 비운이 없다. 망국의 천재는 감옥에서 비명횡사했다. 조국이 누구에게도 침탈당하지 않을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주권을 유지했다면 윤동주는 필시 노벨문학상을 탄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을 것이다. 제국주의로 짓밟힌 조국에 대한 비탄이 어쩌면 그를 더욱 심오한 문학의 세계로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감 생활 동안 겪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고독의 시간을 걸었을지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이 날개를 잃은 채 강요된 고독의 우리에 갇혀 괴로워했을 수많은 밤들. 밝게 타오르던 촛불이 숨 막히는 밀실에서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가듯 아주 천천히 희망이 절망으로 변해가던 그곳에서 윤동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늑한 방의 책상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나의 적당한 풍요로움에 감사한다. 어떤 강요도 받지 않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잘 수 있는 자유로움에 감사한다. 그리고 나를 깊은 고독의 길로 안내해 준 수많은 경험과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품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 것을 다짐해 본다.
젊은 날 생을 마감한 윤동주를 기리며...
<윤동주, 1917-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