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고민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by 타조

안나는 남편 앞에 앉아 있었지만, 이미 마음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지금 침묵하면 모든 것이 더 거짓이 된다는 것도.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아내로 살 수 없어요.”

말을 꺼내는 순간, 그녀 스스로도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남편의 차가운 시선, 그리고 자신이 잃게 될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선택이 자신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 감정을 부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일이었다.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몸 깊은 곳에서 뜨거운 어떤 기운이 느껴진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생소하고 막연한 기분이 어색하다. 따끔하거나 쓰라리고 뜨겁기도 하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느낌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운이 확장하며 가슴에 가득 찬다. 이루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 기분이 무엇 때문인지는 그런 기분을 느낀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같은 생각을 반복하게 되고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듯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돋아나 확장하고 뜨거워진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따뜻한 마음은 사랑의 완성을 통해 환희와 행복으로 발전하거나 사랑의 실패를 지나 고통과 불행으로 바뀐다.


하지만 감정이란 어떤 대상을 향해 한껏 모여 응축되었다가도, 점차 익숙해지고 무뎌져 조금씩 흩어지거나 다른 대상으로 옮겨간다. 모든 사람은 사랑이 영원토록 뜨겁기를 꿈꾸지만 사랑의 열기도 식기 마련이다.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불같이 뜨거운 상태보다 적당한 온기의 상태가 좋다. 조금씩 흩어지려는 사랑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가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반복되는 일상과 익숙함, 뜨거울 땐 보이지 않던 실망이 더해지며 사랑의 온도는 계속 낮아진다. 온도가 낮다고 하여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미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던 이들의 가슴엔 뜨거운 사랑의 열망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감정을 일깨우는 또 다른 대상의 발견에 환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사랑이 단순히 마음의 교감으로 완성되는 영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데 있다. 많은 것을 함께 나누고 깊이를 가지려 한다.


안나는 남편과의 관계가 매우 형식적이고 차가워진 현실을 인지하고 이대로 사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브론스키를 만난 이후 그가 계속 떠오르고, 피하려고 해도 더 강해지고, 억누를수록 더 커지는 감정을 느끼고 만다. 안나는 선택의 결과를 알고 있으며 뜨겁게 달아 오른 사랑을 향해 나아갈지 멈출지 고민한다. 거짓된 삶을 살 것인가 모든 것을 잃더라도 진짜 감정을 따를 것인가? 사회에서 추방될 수 있고, 아들과 떨어질 수도 있고, 삶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음을 알지만 결국 뜨겁게 타오르는 감정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감정은 항상 본능에 치우친다. 이성이 우리의 본능을 통제하고 있지만 이성이라는 것을 작동시키려면 법과 질서가 존재해야 한다. 다른 동물은 자신이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지만 인간은 법과 질서에 어긋나는지를 판단하며 자기 행동을 통제한다. 인간이 철저하게 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간다면 법과 질서는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안에 포용된 윤리라는 가치도 무의미해진다.


안나의 결혼 생활이 안타깝기도 하고 새로운 사랑으로 뜨거운 감정에 행복했던 안나를 응원하기도 하지만 삶이란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는 어려운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법과 질서에 갇혀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은 안나의 몸부림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레프 톨스토이, 1828-1910>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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