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켐의 아노미
아노미란 규제가 해체된 상태로, 행동을 통제하던 규범이 무너지고 개인이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는지에 대한 분명한 지침 없이 남겨진 상태를 말한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정당한 것과 부당한 것, 정당한 요구와 지나친 욕망 사이의 경계가 더 이상 분명하지 않게 된다.
<자살론>, 에밀 뒤르켐
정말 우연히 그를 다시 마주쳤다. 지하철에서 몰상식한 언행으로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던 그 남자.
그날 아침도 지하철역까지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엄동설한의 매서운 바람 대신 봄기운이 부드럽게 스며든 바람이 차분하게 나를 훑었다. 아직 차가운 느낌이 남아 잠에서 덜 깬 나의 몸을 긴장시켰다. 항상 길을 나설 때면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흥미로운 기대를 하곤 한다. 비록 평범한 일상이었더라도 매끄럽게 처리한 일이나 평온함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뿌듯함을 느낀다. 그래서 매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작은 일조차도 정성을 기울이려 노력한다. 그런 소중한 하루의 시작에 당혹스러운 불쾌감을 안긴 그 남자의 등장. 그 무례한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잊지 않도록 반복해서 떠올렸다. 그런 그가 불현듯 내 앞에 다시 등장했다. 그는 수목이 우거진 주택가의 산책로를 빠져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그때와 같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하얀색 마스크가 얼굴의 반을 덮고 있었지만 구레나룻이 턱까지 덥수룩하게 이어지는 옆모습과 머리 모양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도로변으로 들어서자마자 너무나 익숙하게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했다. 교차로에는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이 있었고 나도 그곳에 멈춰 섰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멀어져 가는 그를 주시했다. 그는 또다시 상식 밖의 방법으로 길을 건넜다. 그는 횡단보도를 이십 여미터 남기고 도로를 대각선으로 건너기 시작했다. 그가 길을 다 건널 때 즈음에서야 횡단보도의 하얀 선을 하나 밟았을 뿐이다. 규칙과 질서는 자신의 편의를 위해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 남자가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면 우리의 갈등 상황은 그저 개인 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실례를 범했을 가능성을 고려하며 이 사건이 각자의 시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에 객관적 판단이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파리대왕의 잭은 사회적 규범이 사라지자 바로 규칙을 무시하며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잭과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그 남자는 애초에 규칙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태도를 지녔다.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지키고 있으나 실제로 그 규칙을 지켜야겠다는 내면화된 태도는 형성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보인 모습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버젓이 규칙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도 기회가 되면 그는 똑같은 행동을 취할 것이다. 규칙을 선택사항으로 생각하며 타인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무관심하고 즉각적인 자기 편의가 우선이며 제재가 없으면 자기 행동을 조절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내면화된 규범이 없이 상황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분노가 많거나 상처가 있거나 일부러 반항하기 위해서 취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행동하도록 내면화된 사람이다. 나는 사회적 규칙을 내부 기준으로 갖고 있지 않은 사람과의 접촉으로 불쾌했던 것이다.
에밀 뒤르켐은 그의 저서에서 아노미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사회 규범이 개인 안에서 힘을 잃은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규칙이 있어도 '왜 지켜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는 이 상태는 규칙 준수는 선택사항이고, 공공질서에 대한 책임감은 약하며 개인 욕구 우선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콜버그의 도덕발달 이론에 따르면, 벌을 받으면 안 하고 안 걸리면 그냥 하는 전인습 수준의 도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규범 내면화가 부족한 전인습 단계의 아노미적 개인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하자면, 규칙은 귀찮은 것이고 타인은 고려 대상이 아니며, '지금 편한가'가 행동의 기준이 된다. 불행히도 이건 드문 사례가 아니라 현대에서 점점 늘어나는 유형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특히 익명성 높은 환경과 제재가 약한 상황에서 더 잘 드러난다.
이런 사람에게 무감각해질 수는 없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며 누구나 언제든 나와 같은 상황을 겪을 수 있다. 더욱이 공격적인 성향이 내재된 인물이라면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잘못된 개인주의의 늪에 빠져 이런 사람들을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사회에서 계속 양산하게 된다면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급속도로 붕괴되는 사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남의 일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위협에 자신, 가족, 친구, 혹은 소중한 누군가를 그대로 노출시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에밀 뒤르켐, 1858-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