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공감을 이끌어

누군가를 위한 생각의 깊이

by 타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꽃>, 김소월




한 여자 아이가 애처롭게 사정한다. 눈물이 맺힌 아이의 눈에 원망과 애절함이 서려 있다. 맞은편에는 아이의 엄마가 손에 어떤 물건을 들고 있는데 아이의 시선은 엄마의 손과 눈을 번갈아 향한다. 울먹이는 음성으로 엄마에게 사정할 때는 엄마의 손, 아니 손에 쥐어진 물건을 보고, 엄마가 말할 땐 엄마의 눈을 본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꾸짖지 않지만 단호하다. 이윽고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아이의 엄마는 뒤로 돌아 몇 걸음 걷더니 쓰레기통에 무언가를 떨어뜨린다. 딱 봐도 무언가 대단한 물건은 아닌 듯하다. 아이가 직접 그리고 위에 테이프를 붙인 동물 형태의 스티커인 것 같다.


여자 아이에게 그 물건은 어떤 의미를 가진 물건이었을까?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려 색칠하고 테이프를 붙인 후 오려내면 금세 만들 수 있는 작은 종이 조각. 그것이 여자 아이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맺히게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사실 누구나 여자 아이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소중했던 어떤 것이 사라지거나 무참히 부서지거나 버려지는 경험.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삶에 공감한다. 그렇기에 경험의 부족과 부재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와 타자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그 또한 의미가 없다.


어린 시절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단순한 문학작품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직접적으로 쓰인 표현과 행간에 암시되는 의미까지 감정적으로 많은 것을 느낀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지식적으로 느끼는 해석을 넘어 화자의 입장을 떠올리고 시의 상황에서 발현되는 애수와 이별에 수긍해야만 하는 비애 등 복잡한 감정에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고독하게 놓아두지 않는 것에 저항하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자기 노력이, 디지털과 AI시대를 지나며 개인주의적이고 무미건조해진 우리의 감정을 인간적으로 되돌려 줄 것이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이다. 타인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가득한 사회를 상상해 보자. 배려와 존중은 마음속 공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온기가 흐른다.


김소월.jpg

<김소월, 1902-1934>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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