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유독 외롭다
가슴이 떨렸다. 어떤 선물이 나를 기다릴까?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아주 어릴 때였을 것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크리스마스의 산타할아버지는 당연한 진실이었다. 한 번도 산타할아버지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주변의 어른들과 친구들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했다. 꽤나 오래전부터 선물을 나누어준 산타할아버지의 나이가 몇 백 살이나 된다는 이야기는 놀랍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나이가 많은 것이 당연했다. 산타할아버지는 세상의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신비한 존재였고 어린 시절 나의 신이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날은 가슴이 떨렸다.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의심하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큰 충격에 휩싸였을지 떠올려 보았지만 특별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꽤나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기에 별반 큰 충격은 없었구나 싶다. 어쩌면 큰 일도 금세 잊고야 마는 나의 성향 탓도 있을 것이다. 이전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을 때 떠오르는 기억이 많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세세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나는 신기하다. 산타할아버지는 세월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잊혀야 하는 시기에 잊힌 것뿐일까?
크리스마스 전날에 가족과 파티를 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부모님은 녹록지 않은 경제적 사정을 어떻게 해서라도 개선시키고자 노력하셨다. 두 분 모두 쉬지 않고 일을 하셨는데 특히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날 가족들이 모여 오붓하게 파티를 하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그런 날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족이 모여 앉아 약간 상기되어 미소 띤 얼굴로 식탁에 올려진 케이크 위의 불붙은 초를 바라보며 작게 박수를 치고 노래 부르던 기억, 무언가 소원을 빌고 함께 입을 모아 촛불을 향해 입바람을 불어내던 기억,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케이크를 잘라 나눠 먹던 기억, 어린 내가 선물을 받고 기뻐하며 행복하던 기억, 분명 있었을 텐데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도 내 무의식 속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지는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은 잘 떠오르지 않는 어린 시절의 사랑이 가슴에 소중히 각인되어 나의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을 만든 것이라고 느낀다. 나 스스로 얘기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따뜻한 사람이다.
크리스마스의 특별함. 석가탄신일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성탄절인 크리스마스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세계적 문화의 흐름과 종교적 영향력에 따른 일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산업혁명이 아시아권에서 일어나 유럽으로 아시아의 문화가 전파되고 영향력을 끼쳤다면 크리스마스보다 석가탄신일이 훨씬 더 유의미한 날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 가끔은 1월 1일처럼 보편적인 특별함을 갖춘 날도 있지만 대부분 특별함이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잠시 떠올려 본다.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가슴 떨리게 선물을 기다리는 특별한 날이었다면, 젊은 시절의 크리스마스는 친구나 연인과 즐겁게 지내는 특별한 날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음악이 흘러나왔고 백화점이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광장에는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영롱한 조명을 반짝이며 아름답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면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다정에서 사진을 찍었다. 왠지 세상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생각하며 즐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나를 쓸쓸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그나마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외롭다거나 쓸쓸한 느낌을 덜 받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외로움은 가족과 함께 있다고 해서 느끼지 않는 감정은 아니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교감하지 않으면 외롭고 쓸쓸하다.
나는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고독한 사람이지만 어떤 날은 유독 외롭다. 최근에는 이런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더 자주 느낀다. 아마도 마음이 허전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의 외로움이 가진 근원을 생각한다. 도대체 나는 어떤 것으로 마음을 채워야 외롭거나 쓸쓸함을 느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써본다. 이렇게 외로움을 안고 지내는 날은 휴대전화를 자주 들여다본다.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을 보며 나와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을 떠올린다. 나와 같은 갈망을 갖고 채워지지 않은 마음을 달래고자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세상에 이런 마음을 갖고 외로움을 달래는 사람이 많을까? 그 사람들은 어떻게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가?
답이 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슴만 먹먹하다. 그러느니 내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를 찾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옷을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집 밖으로 나선다. 적당히 찬 공기가 내 뺨을 스치고 코를 통해 찬 기운이 들어오면 늘어지던 정신이 바짝 긴장한다.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차면 정신이 몸의 고통에 집중하느라 머릿속 생각은 뒷전이 된다. 날은 흐리고 춥지만 공원이나 산책로를 달리면 나의 외로움이 잠시 잊힌다. 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나의 생각을 글로 옮겨보기도 한다.
유독 외로운 날은 함께 외로운 사람을 만나 마음을 따뜻하게 채우고 싶다. 온기와 사랑을 마음 한가득 채우면 어떤 추위와 고난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사진: Unsplash의JESHOO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