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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마음

이별을 상상하며

by 타조

계절이 바뀌는 시기, 사람들이 부르는 계절의 이름은 바뀌지만 계절의 경계는 불확실하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의 입구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날씨는 무덥다. 텔레비전에서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은 짧고 얇은 옷을 입었지만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정오를 지나 태양은 조금씩 고도가 낮아지며 지평선과 가까워진다. 하지만 도심의 높은 건물에 가려져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없다. 더욱이 바쁜 사람들에게 태양의 움직임 따위야 아무렴 어떻겠는가! 태양의 움직임이나 날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자연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 정도겠다. 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해는 서쪽 하늘에서 뜨겁게 열기를 내뿜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햇빛을 받은 지표면도 덩달아 열기를 뿜어낸다. 우리가 가을이라고 부르는 계절에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 여름이 이어지고 있다.


빼곡히 들어찬 건물들 사이를 지나 오래된 음식점이 보인다.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모이는 장소, 가운데가 움푹 파인 화로에 숯불을 넣는 금속 재질의 동그란 테이블이 좁은 통로를 빼고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테이블을 둘러싼 등받이 없는 검은색 의자는 금속 파이프를 이어 만든 투박한 기본 모양이다. 드럼통을 닮은 은빛 테이블과 투박해 보이는 검은색 의자가 놓인 공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든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과 선풍기가 기계음을 내며 작동하고 있지만 화로에서 열을 내는 숯불로 인해 음식점 안은 그다지 시원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익는 고기 몇 점과 쌈채소, 된장찌개와 밥, 그리고 반가운 사람들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펼치는 담소가 음식점 안의 불쾌한 열기를 유쾌함으로 달랜다.


계절이 자연스럽게 흐르듯 사람들과의 인연도 그렇다. 간혹 억지스럽거나 갑작스럽게 맺어지고 끊어지는 인연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우리는 거대한 인간관계의 테이블에 둥글게 모여 앉아 관계를 맺는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된다. 서로를 탐색하며 이해하는 시간이 쌓이고 과정이 깊어질수록 관계의 끈은 두껍고 튼튼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관계의 끈이 시간의 축적에 따라 굵고 튼튼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거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허술해지면 서로를 이어주던 관계의 끈은 얇아지고 약해진다. 어떤 끈은 굵고 튼튼했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약해지고 심지어 끊어지기까지 한다.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 확신하던 상대와의 관계도 속절없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끈을 연결하는 두 사람의 시간이 쌓이고 깊어질수록 관계가 상호보완적으로 강화되어 굵고 튼튼해지는 것은 사실이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라보는 대상의 시선과 감정에 따라 관계의 끈이 가진 견고함이나 굵기는 상대성을 지니고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두 사람이 가진 마음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가장 안타까운 부분도 바로 이런 상대적인 마음의 크기 때문에 발생한다. 아낌없이 마음을 전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헛수고가 되어버리는 일, 바로 그것이 우리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전시회장과 극장에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도 마시며 사랑을 노래한다. 깊어지는 사랑을 느끼며 부푼 마음으로 희망을 꿈꾼다. 세상이 자신을 축복해 주는 것 같고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자연이 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여름 후텁지근한 바람에도 가슴이 벅차고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도 마냥 행복하게 흘려보낸다. 눈 맞춤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깊은 마음을 느낀다. 우리가 꿈꾸는 사랑은 이런 행복이 영원히 이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튼튼히 엮어온 관계의 끈이 느슨해지고 약해진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이러한 변화를 겪으면 두 사람의 관계에 자그마한 균열을 발생시킨다.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이 차가워졌음을, 관계의 끈이 약해졌음을 인식하게 된다. 눈 맞춤의 순간에 누군가의 얼굴에서 예전의 사랑을 읽을 수 없거나 불편한 마음이 드러난다.


우리는 관계에 생긴 균열을 매우려 노력한다. 물론 모든 균열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지만은 않는다. 작은 상처일 때에야 치료하기 쉽겠지만 일단 상처가 커지고 깊어지면 감당할 수 없다. 어느 광고에 등장한 카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가 떠오른다. 깊은 사랑이 선사하는 행복의 선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은 이별이라는 방식으로 불행의 고통도 안긴다. 이별의 고통을 겪은 사람이 또다시 사랑을 갈구하는 이유는 사랑으로 얻는 충만한 행복 때문이다.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는 마음은 그야말로 허풍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이별의 고통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재차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불안하다. 일정 시간 연락이 되지 않거나 사소한 말다툼을 하거나 눈빛에서 사랑의 마음이 식은 것을 느끼거나 하는 일로 불안하다. 사랑의 마음이 클수록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행복이 불행으로 바뀔까 봐 불안해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다른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까, 나에 대한 마음이 식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면서 겁쟁이가 된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이별의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마음이 너무 커서 큰 충격에 빠질 것을 염려한다. 이별을 상상하며 자신의 마음에도 스스로 냉기를 불어넣는다. 덜 상처받기 위해서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통보받는 이별은 매우 큰 상처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별을 걱정하며 겁쟁이가 되어 달아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애통한 일이다. 하지만 서로는 세상에 태어나 수많은 사람 속에서 만난 각별한 인연이다. 사랑에 정성을 기울이려는 노력은 진정 아름다운 삶의 가치가 아닐까? 자신과 동시대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찬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은 눈동자로 그 특별한 사람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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