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소중함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러운 꽃이 풀꽃이라고 한다. 꽃은 원래 아름답지 않던가? 어째서 자세히 오래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어떤 대상을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순간적 관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관심을 기울여 바라본 대상, 그것을 향한 마음은 어떠할까?
인류는 생존을 위해 수렵과 채집, 사냥을 하던 시절이 있었고 자연 속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여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동물적 감각을 날카롭게 다듬으며 살았다. 도구를 사용하고 기술을 발전시킨 인류는 생태계의 정점에 오르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생존을 위한 동물적 감각의 날카로움이 무뎌졌다. 생존을 다투는 시급한 상황에서 벗어난 인류의 동물적 감각이 퇴화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 우리의 시선은 생존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한 이상으로 향했다. 생존 외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자극이 넘쳐나기 때문에 주변을 차분하게 응시하거나 관찰하기가 참 어렵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도심의 아스팔트와 인도가 펼쳐진 온통 비슷한 풍경에 우리의 시선을 마땅히 둘 곳이 없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목적지로 향하는 곳에 시선을 두거나 휴대전화에 집중하며 걷는다. 우리의 시선이 땅을 향할 때는 기껏해야 발 디딜 곳에 발이 빠질 물웅덩이나 걸려 넘어질만한 돌부리 같은 물체가 있는지 살펴보는 정도이다. 도로 양 옆으로 조경수를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다. 어떤 곳은 지역 주민들의 만족스러운 생활을 위해, 어떤 곳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또, 도심지의 경관을 보기 좋게 꾸미기 위해 가꾸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계절에 우리 주변에서 나무에 핀 꽃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무의 꽃을 주제로 하여 축제까지 벌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무에 핀 꽃을 특별하게 인식하곤 한다.
우리의 시선이 온통 화려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나무의 꽃에 머무는 동안 나태주 시인은 고개를 숙여 낮은 곳에서 자라난 풀꽃을 보았다. 지구의 중력을 거슬러 꿋꿋하게 자란, 하지만 한 철로 생을 마감하는 풀, 그 풀의 얇은 줄기가 바람에 맞춰 춤을 추듯 쉼 없이 흔들렸을 것이다. 줄기 끝에 앙증맞게 핀 꽃에 시인의 시선이 꽂혔다. 아주 옅은 향기를 내는 작은 풀꽃. 허리를 구부리고 쪼그려 앉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생김새조차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할 작은 꽃이다.
풀꽃을 자세히 보기 위해 허리를 숙인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언뜻 우리는 너무 멀고 화려한 것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여러 매체에서도 더 화려하고 더 다채롭게 대상을 꾸며 보여주기 바쁘다. sns에는 잘 꾸며지고 정제된 사진과 영상이 넘친다. 우리의 생존과는 무관한 것에서 시기와 질투를 느끼며 정서적으로 가난해진다. 실상 우리의 삶과 큰 연관성은 없지만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여 자신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너무 당연해서 소중함을 잊게 되는 존재가 우리 주변에 있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이미 자신의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며 익숙해져서 덜 소중히 생각하게 되는 존재.
우연히 소중한 사람을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우리는 서로 눈을 맞추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가볍게 포옹을 하고 어디로 향하는지 무엇을 하느라 그곳에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깐의 반가운 만남 끝,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고 우리는 가볍게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마침 시간의 여유가 있던 참이었고 소중한 사람은 약속 장소로 서둘러 이동하는 중이었다. 나는 작별의 인사를 나눈 곳에 한참을 서서 소중한 사람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면서도 몇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았고 우리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우리 사이는 점점 멀어졌지만 장애물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모퉁이를 돌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는 곳을 지나칠 때,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그 사람의 작아진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삶은 사랑으로 가득하다. 바쁘고 지쳐서 사랑의 온기를 잘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길고 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소중한 사랑을 잊지 않고 마음을 온기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어쩌면 그 사랑을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디 풀꽃의 이야기를 통해 가깝고 낮은 곳에 있는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를 떠올리자. 사랑은 인생의 전부이다.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