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불현듯 찾아오지 않는다
삶은 길지 않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짧지도 않다. 젊을 때는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기 때문에 조금 더 미래지향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삶의 시계를 바라보며 숙고하여 미래를 조망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시선이 가득한 시기였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학창 시절이나 사회생활 초기에는 삶에 대한 고민보다는 공부와 취업 준비로 바빴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삶을 관조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며 바쁘게 살아온 시기를 지나 어느덧 살아온 시간을 제법 쌓아왔다. 이제는 앞날을 희망으로 가득한 미래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적당히 평범하고 때론 아픔도 있을 것이라 여기며 조심스럽게 미래를 바라본다. 그리고 단지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만 변화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소중한 사람과의 만남,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의 경이로운 순간,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누군가의 죽음 등의 경험이 살아온 시간 사이에 겹겹이 쌓였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시간에 녹아들어 함께 쌓이면서 과거가 미래 못지않게 중요하게 느껴진다.
몇 년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는 요양원에서 생활하시다 생을 마감하셨는데, 마지막으로 요양원에 찾아뵈었을 때는 거의 거동을 하지 못하셔서 휠체어에 의존하여 이동하셨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인 생활하실 수 없었으며 팔과 다리에 근육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내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니를 품에 안았을 때 그 앙상한 팔과 다리를 매만지며 어찌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요양보호사 앞에서 흘린 눈물을 닦고 할머니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그 사진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의 기억이 되었다. 요양원으로 할머니를 모시기 전, 할머니는 경증 치매를 앓고 계셨다.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 할머니는 당신의 방에 앉아서 가만히 옛 앨범을 찬찬히 살펴보고 계셨다. 부모님은 할머니께서 평소에도 자주 앨범을 살펴보신다고 말씀해 주셨다. 요양원에서 기력조차 없던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예전 앨범이라도 들춰보시던 당신의 모습이 떠올라 더 복받쳤었는데 그때 떠오른 생각 때문이었다.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는 미래의 끝에 가까워진 사람은 과거의 삶을 끝없이 회상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인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나도 이제 과거의 기억을 가끔씩 떠올린다. 어떤 날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울적한 기분이 들어 그 마음을 스스로 달래기도 한다. 앞날을 중요하게 생각했을 때에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뤄두거나 희생했다. 하지만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된 지금은 더 이상 미래의 행복을 바라보며 현재를 함부로 다루지 않기로 했다. 불만족스러운 현재가 쌓이고 쌓여 언젠가 과거를 회상했을 때 행복한 기억보다 불행한 기억이 많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요즘은 현재의 삶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사랑의 시작부터 그 결실까지 수많은 행복과 온기가 사랑의 삶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모든 사랑에는 해피엔딩만 있지 않다. 사랑으로 시작했으나 이별로 끝을 맺을 수도 있다. 이별은 불현듯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분명 어떤 서운함이나 실망, 또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사랑이라는 견고하고 완벽해 보이는 유리그릇에 균열을 만들고 힘을 가한다. 겉으로 보기엔 반짝이고 투명하며 무척 견고해 보이지만 실제로 한없이 약한 유리그릇은 균열과 압력에 결국 산산이 조각나버리고 만다.
삶의 끝에서 바라본 과거의 기억들이 이별을 맞이하고 바라본 사랑의 행적을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선택과 상황이 우리의 인생을 쌓아 올렸듯, 어떤 사건들이 겹겹이 쌓여 사랑의 끝인 이별을 맞이하게 했을 것이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온기를 가득 담은 존중과 배려의 마음가짐으로 현재의 사랑에 집중하는 것이 사랑의 종착지에서 행복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